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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

스페인 한 달 살기 12 : 스페인 바르셀로나

by 이지

가우디


그라나다 여행을 마친 후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이번 일정은 9박 10일. 제법 긴 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를 다녀오고, 시내를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 돌아볼 생각이었다.


10일간 머물 아파트는 방 두 개 짜리였다.

6개월 전 미리 예약한 덕분에 같은 가격의 호텔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얻을 수 있었다. 부엌과 작은 테라스까지 갖춘 집. 비록 테라스 주변을 다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뷰는 막혀 있었지만, 혼자 지내기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FC 바르셀로나 축구팀, 그리고 이 도시의 영혼이라 불리는 건축가 가우디다. 도시 전체가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듯했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그의 숨결이 스며 있었고, 사람들은 바르셀로나가 가우디 한 사람으로 먹고산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사르라다 파밀리아


그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가우디는 서른 살에 이 성당의 설계를 맡아 무려 40여 년간 생의 전부를 바쳤다. 그에게 이 성당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신을 향한 신앙이자 삶의 목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앞을 걷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는 노숙자로 오해받아,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성당이 완성되기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KakaoTalk_20240430_114949480.jpg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P20170122_133203017_33A31E54-A620-4585-B587-4D6133B43762.JPG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은 인파로 붐볐다. 입구 옆에는 가우디가 생전에 머물던 작은 집이 있었고, 지금은 작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의 숙소 옆 계단을 따라 올라 성당을 마주했을 때, 멀리서 바라봤던 장엄함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가우디는 성당 곳곳에 여러 이야기들을 새겨 넣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된 조각상들, 그 안에 담긴 서사들이 내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다. 멀리서 볼 때도 아름다웠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가우디의 노고와 열정이 그 조각마다 배어 있는 듯했다. 많은 유럽의 성당을 보았지만, 이 성당만큼은 결이 달랐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신념과 천재성은 이 성당 속에서 아직도 숨 쉬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한마디로 '빛의 예배당'이었다. 가우디는 자연광을 이용해 성당 내부를 밝힐 수 있도록 설계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색색의 물결이 되어 상당 안을 채웠다. 붉고, 푸르고, 노란 물결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마치 숲 속에 들어온 듯한 평온함을 주었다. 기둥은 직선보다 곡선을 사용해 부드럽고 유기적인 느낌을 주었고, 전체 구조는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처럼 느껴졌다.


가우디는 예술을 신께 바친다는 사명감으로 건축 외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기록하는 과정이자, 신을 향한 믿음이었다. 결국 그는 성자만 묻힐 수 있는 성당에 안장된다. 그의 삶과 작품은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KakaoTalk_20240430_114949480_01.jpg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


IMG_1449.JPG 스페인 바르셀로나


9일 동안 머문 아파트는 1층이라는 단점만 빼면 너무나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거실, 방, 화장실, 작은 발코니까지 갖춘 공간이 하루 5만 원 남짓이었다. 믿기 어려운 가격이었지만, 바르셀로나의 겨울 햇살 아래선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숙소 문을 열고 나서면 오렌지 나무가 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고, 건물 사이마다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옷가지와 코끝에 닿는 햇살 냄새. 그 모든 게 '사람 사는 도시'의 향기였다. 바르셀로나의 겨울은 따뜻했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살랑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이 도시는 사랑스러웠다.


나의 아침 의식


가우디의 건축물도, 따뜻한 햇살도 좋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숙소 골목 끝의 작은 카페였다. 테이블은 단 두 개. 카페 안에는 잔잔한 재즈와 커피 향이 흘렀다. 작고 예쁜 간판과 벽에 세워져 있는 화분은 카페 주인의 감성과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스페인의 커피잔은 늘 작았다. 그 작은 잔에 담긴 커피를 후루룩 마시는 게 어느새 나의 아침 의식이 되었다. 그렇게 9일 동안, 이 작은 카페는 내 여행의 사랑방이 되었다.


바르셀로나, KOMO KASA

마지막 날 아침, 나는 익숙하게 카페를 찾았다. 늘 마시던 라테를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카페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그녀는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찰칵.

그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바르셀로나의 골목, 햇살, 그리고 내 여행의 마지막 온기가 담겨 있었다.



에필로그


한 달간의 여행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마드리드, 포르투, 리스본 그리고 바르셀로나까지.

많은 도시를 지나며 만난 사람들, 잃은 것과 얻은 것들이 마음속에 차곡히 쌓였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커피 한 잔으로 그 모든 여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작고 예쁜 카페 'KOMO KASA'. 그곳에서 나는 '스페인 한 달 살기'라는 길고도 짧은 여정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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