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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r 31. 2023

따뜻한 햇살과 정

스페인 한 달 살기 10 : 포르투갈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

리스본


리스본 숙소에 도착 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감기와 포르투에서 생각 없이 마셔 댄 와인 때문인지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시내에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는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은 공용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방안에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청소 상태가 불량해서 바닥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더럽고 불편한 숙소에서 누워 이틀을 보내야 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런 숙소에 묵어야 한다니 암울했다. 싼 맛에 이런 숙소를 예약한 나를 원망할 수 밖에..

     

이틀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외출하는 것 말고는 숙소에서 누워 쉬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먼 여행지까지 와서 방안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왠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이틀밤을 푹 쉬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컨디션을 회복했다. 가벼워진 몸으로 아침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평점이 높고 아침식사가 훌륭하다는 리뷰가 많은 곳이었다. 리스본의 여행은 이 식당에서 시작됐다. 평일 오전 시간의 손님은 나뿐이었다. 사장님이 앞치마를 두른 채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사장님이 추천한 음식은 아침에 먹기 딱이었다. 빵 안에 야채와 햄 사이에 장님이 직접 만든 소스가 가득했다. 샌드위치의 맛 보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정이 좋았다. 사장님은 옆에 서서 계속 말을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귀찮을 수도 있는 사장님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맛은 있는지 초췌한 얼굴을 한 나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었다. 아플 때 필요한 건 사람의 정이었다. 사장님의 친절과 관심은 어떤 약보다 좋았다. 사장님의 친절은 그간 아프며 서러웠던 마음을 스르르 녹아내렸다.


"통조림 장식이 너무 예뻐요." 

"이 통조림은 리스본 어디에서나 살 수 있어요. 그리고 통조림 옆에있는 와인은 와이너리에서 구입한 거예요."      

나의 뜬금없는 인테리어 칭찬에 사장님은 즐거워했다. 그리고 어디서 소품을 샀는지 알려주며 나에게도 사는 것이 어떻냐며 권했다. 나는 그 후 마트와 와이너리에 들러 식당에 전시되어 있던 물건들을 찾아 구매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걷다 우연히 성 앞에서 군악대의 행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위치한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카페에서 에그타르트를 잔뜩 사서 먹었다. 바로 앞 공원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서 자석 몇 개를 사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따뜻한 낮시간 리스본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의 퇴실 시간을 연장해 다시 잠을 청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밤에 일어나 캐리어에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9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다음날 새벽에 세비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팠던 탓에 리스본에서의 추억은 몇개 밖에 남기지 못했다. 친절한 사장님의 맛있는 아침 식사, 예쁜 자석과 통조림, 에그타르트. 몇 가지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통조림과 미니어처 와인은 한편에서 방을 꾸며주고 있었고, 플리마켓에서 산 생선 자석 3개는 냉장고에 예쁘게 붙어 있었다. 기념품은 짐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리스본에서 가장 짧은 기간 가장 많이 기념품을 산 것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리스본의 그 맛있는 아침식사를 나는 매일 방 안에서 느끼고 있다. 


세비야

 

새벽 내내 달린 버스가 세비야에 도착했다. 아침 7시도 되지 않은 탓에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텅텅 빈 거리에서 캐리어를 끌고 숙소까지 걸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날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24시간 프런트를 운영하는 호텔이 아니었던 탓에 직원이 출근하는 9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문 앞에 캐리어를 눕히고 고기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9시가 되자 직원이 웃으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렸죠?"     


2시간을 기다려 방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한 숨 더 자기로 했다. 워낙 피곤했고 리스본에서 몸이 아팠던 탓에 휴식이 필요했다. 핸드폰을 보니 친구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던 친구와 연락이 됐고 세비야에서의 날짜가 맞아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던 친구였다. 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맛집을 찾아 점심을 함께 먹고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다. 세비야 대상당 앞의 큰길은 굉장히 넓었고 양옆으로 오렌지 나무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길 가운데에는 최신 트램이 지나다녔다. 1,000년이 넘은 건축물 사이로 세련된 트램은 아름답고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는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었다.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왕국의 이사벨 여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신대륙 탐험에 나선다. 콜럼버스는 4차례 신대륙을 탐험하여 쿠바 등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스페인에 막대한 부를 안겼지만 후대 왕의 무관심 속에 콜럼버스는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 죽게 된다. 콜럼버스는 죽음을 앞두고 '절대 스페인에 나를 묻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긴다. 콜럼버스는 후에 스페인의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로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죽어서도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콜럼버스의 관은 공중에 세워지며 역대 왕들이 콜럼버스의 관을 짊어지게 되었다. 당당하게 앞을 바라보며 관을 지고 있는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를 천대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관을 지고 있는 왕들의 모습이 콜럼버스를 존중하는 후대 사람들의 평가를 엿볼 수 있었다. 


세비야는 다른 도시들보다 따뜻했다. 가장 남쪽 아프리카 대륙과 마주하고 있어서 인지 1월의 한 겨울에도 니트 하나만 입어도 춥지 않았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스페인 광장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 친구와 나는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따뜻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를 떨며 자전거를 타니 기분이 컨디션이 좋아졌다. 자전거를 한쪽 편에 두고 우린 스페인 광장을 보며 그늘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서양인 몇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 한국사람이야?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을까?"     

"맞아. 한국에서 왔어. 뭔데?"

"세비야에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어디를 가나 볼 수 있어서.."

"그러게..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정말 좋아해. 지금 한국 사람이 많은 건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거나 휴가를 낸 직장인들이 많아서 일거야." 이렇게 얼버무린 후에 나는 광장을 둘러봤다. 정말이었다 광장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한국인들은 여행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아파서 혼자 여행을 한 지 2주가 흘렀고 오랜만에 따뜻한 도시에서 친구와 햇살을 받으며 수다를 떤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아파서 누워만 지내다 보니 이런 '정'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친구와 여행을 함께 하며 먹은 밥, 커피, 맥주는 몇 배는 더 맛있었고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하면 몇 배는 더 가치 있어진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혼자 하는 여행보다는 좋아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콜럼버스의 무덤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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