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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선고, 왜 늦어지나

헌법재판소는 정치를 하고 있다

by 삼중전공생

현재 상황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사실상 4월로 미뤄졌습니다. 2월 25일에 변론이 종결된 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심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으로는 최장 기간입니다.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이상신호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의 전조 아니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 탄핵 이후 출마가 예상되는 여권 대권 잠룡들을 중심으로 필사적인 '배신자 낙인' 피하기 무빙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등에 칼을 꼽았다는 미운털이 박힌다면, 앞으로 국민의힘에서 영원히 '큰 정치'는 못하고 '유승민화' 될 테니 말입니다.


이렇게 중차대한 사건의 판결이 하염없이 미뤄지는 것은 분명히 '이상신호'입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판단으로 선고를 연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관측됩니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판결을 기다린다는 것인데, 언뜻 보기에는 이런 가설은 이재명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은 26일 이후인 27일에도 선고일이 공지되지 않은 점은 설명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이재명 판결을 기다렸다는 세간의 추측에 힘을 실어주지 않기 위해서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재판관들의 평의 시간이 하루 1시간 정도로 그다지 길지 않다고 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라거나 '결론을 못 내린 재판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으로 나뉘는데, 만일 정말로 헌법재판소가 이재명 판결을 기다린 것이라면 이 점이 잘 설명되긴 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 가설을 깊게 파고들어 봅시다.




윤석열 탄핵 심판의 구조와 영향을 주는 요소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쟁점들 중 '하나만이라도' 재판관 6인으로부터 중대한 위헌성을 인정받는다면 일단 탄핵은 인용되게 됩니다.


(1)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행위

(2) 계엄사령관을 통해 포고령 1호를 발표하게 한 행위

(3)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진입해 국회 활동을 방해한 행위

(4)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중앙선관위를 압수수색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쟁점들은 각자 다음의 순서로 따지게 될 것입니다.


1. 각 쟁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가?

2. 각 쟁점이 사실인가?

3. 각 사실이 위헌성을 가지는가?

4. 각 사실의 위헌성이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할 정도로 중대한가?


법리적으로만 보면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인 사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도 탄핵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① 박근혜 탄핵 인용 때의 전례를 따라 만장일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② 만약 재판관 중 일부가 기각/각하 결론을 내렸을 때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③ 윤석열이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것/탄핵되는 것이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④ 이 타이밍에 선고가 나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는가?

⑤ 만약 내가 인용/기각/각하 결론을 내렸을 때 법조계에서의 내 평판이나 커리어는 어떻게 될 것인가?

⑥ 만약 내가 인용/기각/각하 결론을 내렸을 때 나와 가족의 안전과 안녕이 보장될 수 있는가?




헌법재판소의 선고 지연이 정무적 판단인 이유


우선 현재 대부분의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정석적인 시나리오를 먼저 검토해 봅시다. 만약 재판관 중 일부가 1. 부터 4. 사이의 순서 중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겨서 인용과 기각/각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요인과 맞물려 헌법재판관들의 만장일치를 가로막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재판관이 2명 이하라서 헌재의 결론을 뒤집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처럼 탄핵 반대 여론이 득세하고 과열된 상태에서는 그 이후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재판관으로서 평생 책임을 묻게 될 것이기에 선고가 지연되더라도 기각/각하 입장의 재판관을 설득하느라 재판이 지연된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본다면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시간이 1시간 정도로 짧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득 작업을 한다면 각자 법리를 검토하는 시간보다 평의하는 시간이 더 길어야 정상인데, 지금 헌법재판관들은 그 평의조차 각자 법리를 검토한다는 이유로 간간이 쉬고 있습니다. 심리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1. 2. 의 사실확정 단계는 이미 지났을 것입니다. 문제는 3. 4. 의 법리 포섭의 단계인데, 짧게나마 헌법 공부를 한 제가 봐도 그렇고, 다른 대부분의 법조계 실무자나 학자들도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가 분명히 중대한 위헌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관들 중 2인 이하라도 이러한 실무나 학계의 '일반적인 중론'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은, 헌법재판관 중 일부가 '③, ④, ⑤, ⑥의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는 설명하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4월 18일에 헌법재판관 2명이 은퇴하기 때문에 그전에 어떻게든 결론은 나야 합니다. 더구나 법조계의 일반적인 인식과 마찬가지로 법리적으로 명백하게 인용이 맞다면, 하염없이 선고를 미루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헌법재판소가 고려하는 정무적 판단은 ,가 됩니다. 이 점을 다시 깊게 검토해 봅시다.


헌법재판관들이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탄핵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위헌이라고 본다면, 윤석열의 복귀를 검토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윤석열의 탄핵만 검토하면 될 것인데, 이 문제는 다음 대선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윤석열 탄핵이 대한민국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는 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이냐는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을 하기로 하고 정무적 판단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재명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재명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만일 항소심 판결 이전에 탄핵 인용을 해버리면, 이재명 사건을 맡은 2심 재판부는 사실상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을 손에 쥐게 됩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식으로 2심 재판부에게 막중한 책임을 지우고 싶어 할까요? 헌법재판관들도 한 명의 법학자로서 법관의 손에 미래 대통령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론 : 민주당은 어떤 전략을 가져가야 하는가


제가 보기엔 이미 결론은 확실히 났습니다. 윤석열 탄핵 인용은 기정사실입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정무적 판단으로 선고 시기만 고의적으로 지연시켰던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민주당을 심리적으로 괴롭히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극우 세력이 기세등등해지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대한민국 최고 법학 전문가이자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들은 사법부가 사실상 미래 대통령을 결정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고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국민이 아니라 법관들에 의해 오염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 헌법재판관들은 느긋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정치 현장에 당사자로 있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극우 세력이 자꾸 세를 불리는 게 불안할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최고 커리어를 달성한 법학 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사정은 국민주권의 원리와 삼권분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에 비하면 작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민주당도 지금처럼 거리에서 강공을 펼치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의원과 지지자 같은 당의 뿌리 조직을 혹사시키면 민주당의 온건한 이재명 지지층이 소모됩니다. 그렇게 되면 강성 지지층만 남아 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휘둘리게 될 수도 있는데, 그건 이재명 개인에게도 좋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좋지 않습니다. 차분히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면서 이미지 관리에 들어가는 게 더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됩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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