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상황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2022년 대선 당시 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이 나왔습니다. 이제 남은 절차는 다시 고등법원으로 사건이 내려가 파기환송심을 진행하는 것인데,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기속 되므로 유죄 판결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이제는 형량이 문제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게 화제인 까닭은 만일 여기서 이재명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당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이번 대선에 출마할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재명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미 이재명은 선거법 위반 전과가 있는 데다 1심에서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파기환송심이 확정되기 전에 대선을 치러서 당선되면 그만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파기환송심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피선거권은 범행 시점인 2022년 기준으로 5년 간 박탈, 징역형에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할 경우 피선거권은 2022년 기준으로 10년 간 박탈되게 됩니다. 현재는 2025년이므로 2022년으로부터 3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을 경우 지금도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인 것으로 소급하여 간주, 즉 이번 대선 후보 등록 자체가 무효로 되어 결과적으로 당선도 무효가 됩니다. 즉 이번 대선에서 설령 이긴다고 하더라도 '당선 무효'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물론 파기환송심에서도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재판 지연 전략을 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관계를 다툴 것도 없고 법리 판단 또한 대법원에서 모두 나온 상황이기 때문에 지연 전략을 쓰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후술 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등의 절차적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시간을 끄는 것은 당분간 가능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마저도 6개월 정도에서 길어야 1년 이상은 어려워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현될 수 있는 시나리오
이제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서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구사일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대한 새로운 증거의 출현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전까지 '중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대법원의 법리를 다시 적용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기고, 이를 이유로 재상고하여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다시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럴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이미 재판 과정이 충분히 길었고, 이재명 측도 무죄 판결을 받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해 가며 재판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2) 이 사건에 관계된 법률 혹은 법해석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게 되면 해당 법률에 의한 판결들이 소급하여 무효가 되기 때문에 이재명이 받은 유죄 판결도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이미 이 사건에 관한 재판에서 수시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재판 지연 전략의 일환으로 반복적으로 신청해 왔고, 또 번번이 기각되었기 때문에 이 경우도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3) 형사소송법·공직선거법 개정
파기환송심이 끝나기 전까지 이재명 본인에게 무죄를 내릴 수밖에 없게 하거나 유죄가 되더라도 피선거권 박탈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면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신법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신법의 적용을 받아 대통령 당선 무효는 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황당하고 무도해 보이지만 이미 친명계에서 작년에 추진했었던 전략이고(비록 거부권 행사 가능성 때문에 좌절되었지만),
지금도 다시 추진되고 있는 전략입니다.
현재 새롭게 추진되는 것은 선거법 개정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개정이지만 이건 더욱 황당한 법개정입니다. 대통령이 되지 마자 이미 받고 있던 모든 재판이 중지될 것 같으면, 이제 앞으로 누가 선거법 지켜가며 대선 선거운동하겠습니까? 모든 교육감, 지자치단체장, 국회의원들이 불법선거자금 모금이나 부정투표 등이 적발되면 처벌받고 때에 따라서 당선 무효가 되는데, 대통령만 예외로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언론에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당선 이전에 지속되던 재판도 중지시키는 것인지에 관해 법조계 내에서도 논란 중이라고 나오던데, 이재명 같은 경우에는 2022년 당시 선거법 위반 범행이 2025년 대선 입후보 자격으로서의 피선거권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불소추특권에 의해 재판이 정지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조차 불소추특권에 의해 정지되는 것으로 본다면 사실상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경쟁 후보자를 청부살인하거나 정치깡패를 동원해 전국적인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작업을 벌여 당선되었어도 임기를 보장하는 국가였던 셈이 됩니다. 이런 식의 법해석이 공직선거법이나 형사상 불소추특권의 취지 및 대한민국의 전체 법질서와 체계적으로 조화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민주당이 폭주해서 법안을 통과시킨다고 할지라도 헌법재판소에서 분명히 위헌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제가 보기엔 이재명이 구사일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6월 3일 대통령 당선 때까지 파기환송심과 재상고로 시간을 끌다가, 당선된 이후에 자신의 피선거권 박탈을 막는 선거법 개정안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금 민주당이 이재명의 사당처럼 되었다지만, 이런 식으로 국회의 입법권이 특정 정치인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걸 151명 이상의 의원들이 동의해 줄 수 있을까요? 원내에 친명계라고 할 만한 사람은 어림잡아 80~100명 내외일 텐데 재상고가 끝나기 전까지 수십 명을 구워삶는 게 적어도 상식적으로는 쉬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윤석열이 임기 말 여당 의원들을 각종 기관장에 꽂아주겠다고 포섭해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황당무계한 논리로 방어했던 걸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소신과 정의감이라는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것이기에 의외로 작업이 수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은 후보를 교체할까 혹은 교체해야 할까
하지 않을 가능성이 99% 이상입니다. 우선 이재명 본인이 여기서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고, 민주당 내에 친명계를 견제하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무엇보다 파기환송의 법리적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민주당 당원들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이재명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몇 번을 다시 후보 경선을 하더라도 이재명이 당선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재명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만일 이재명이 재상고심 선고 이전에 선거법 개정에 실패한다면 이재명은 그 순간 당선 무효가 됩니다. 물론 그냥 물러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윤석열처럼 계엄령을 선포하지는 않겠지만, 당선 무효를 확인하고 공표해야 하는 중앙선관위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압박하고 무력화하는 것 정도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오직 이재명 단 한 명의 정치 생명 때문에 매우 비생산적이고 극심한 사회 갈등과 소란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만에 하나 재상고심 선고 이전에 선거법 개정에 성공해서 정상적으로 대통령 임기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습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이재명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국회 과반과 정권만 장악하면 법 위에도 설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서라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말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는 한가요? 현실적으로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교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옳은 일인지는 진지하게 따져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결론
여하 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21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당선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국회의 입법권과 대통령의 권력을 알뜰하게 남용한다면 사법부의 견제도 무마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법관들의 양심과 소신이 땅에 떨어졌다면 기존 양형기준과 판례를 깨고서 아주 운 좋게도 파기환송심에서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나올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재명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고, 사법 리스크도 임기 중에 해소되어 정상적으로 5년 간의 임기를 마칠 수 있으리라고 보는 편입니다. 다만 그 과정이 매우 시끄럽고 사회적 비용을 많이 소모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정치사에 대단히 질이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이재명이 그 질 나쁜 선례를 대한민국에 안겨준 것 이상으로 무언가 대단한 성과를 임기 중에 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제껏 국회 과반을 점한 정당 대표로서 통과시킨 법안들만 봐도 딱히 고평가 해줄 만한 게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 대한민국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불행한 사실은, 이재명이 아니라면 투표해야 하는 사람이 한덕수가 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권 내내 권력 의지도 존재감도 없던 총리가 느닷없이 친윤계와 김건희 라인의 러브콜을 받고 출전한 건데, 이들이 한덕수에게 러브콜을 친 이유는 누가 봐도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장 아무런 정치 기반과 세력이 없는 한덕수가, 캠프 조직을 대체 누구로 꾸렸겠습니까?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