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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파기환송, 사법부 엘리트의 이재명 탄압인가?

이재명은 억압받고 있는가

by 삼중전공생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번 주 토요일의 [지금의 국제정치]는 [한국 정치 톺아보기] 연재로 갈음하겠습니다.



대법원의 신속 판결, 대선 개입인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이재명은 놀랍지 않게도 이에 불복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 전체를 내란 세력이라 싸잡아 비난하며 이들이 이재명을 '두려워해서' 대선 개입을 통해 발악을 하는 것이라 규정지었습니다. 마치 이재명을 억압받는 민중의 수호자이자 대변자로서 희생되고 있는 듯이 묘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1. 7만 쪽 기록을 2일 만에 읽는 건 불가능하니 판결은 짜인 각본이다?


7만 쪽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2일은 거짓입니다. 2심이 3월 26일이었고, 상고된 것이 4월 1일, 전원합의체 회부가 4월 22일이었습니다. 이후 두 차례 합의기일이 있고서 5월 1일에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의 심리만 해도 일주일 간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미 언론에 널리 공개된 아주 기초적인 사실에 대한 왜곡은 분명한 정치적 선동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7만 쪽이라 하더라도 그걸 재판관들이 모두 읽는 건 아닙니다. 상고 직후 재판연구관 등 실무진들은 본 심리 개시 이전부터 사건 개요 정리, 상고이유서 검토, 기존 판례 분석, 법리 쟁점 파악 등을 정리해서 수백 쪽 분량의 검토보고서를 작성해 올리고, 대법관들은 주로 그것을 읽고 심리합니다. 실무진들에게는 항소심 선고 이후 상고심 판결까지 36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으니 대법원이 행정 역량을 총동원한다면 7만 쪽이라도 소화하지 못할 분량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따지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이미 하급심과 헌법재판을 비롯한 모든 재판이 재판연구원(로클럭) 내지는 헌법연구관의 서포트를 받아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년차 재판연구원은 아예 판결문 초안을 전부 작성하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의 수와 기록을 생각하면 혼자서 그걸 감당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굴러왔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던 시스템을 이제 와서 비난의 초점으로 삼는 것은 우스운 꼴입니다.


게다가 상고심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관계는 2심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따라서 기록이 아무리 방대해도 기초적인 사실관계에 관한 문건들은 실무진 수준에서도 배제되거나 잠깐 확인하는 수준에서 검토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심지어 법원이 취급하는 기록이 무슨 전공서적이나 소설책처럼 글자로 빼곡한 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인 공문서처럼 공백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수십 년간 같은 형식의 문건을 속독하는 훈련을 받은 법관이라면 며칠 만에 혼자 수천 쪽을 검토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를 일반적인 도서로 단순 환산해서 수백 권이 넘느니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법실무를 전혀 모르고 하거나 고의로 모른 체하는 저급한 프로파간다에 불과합니다.


결국 "대법관이 2일 만에 7만 쪽 기록을 검토하는 건 불가능하니 유죄로 결론을 정해두고 말을 짜 맞춘 것에 불과한 졸속 날램 판결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심각한 잘못입니다. 2일도 틀렸고, 대법관이 직접 7만 쪽을 모두 읽는 것도 아닙니다. 전원합의체가 일주일 만에 결론을 내는 건 여전히 이례적인 일이긴 하나, 그럼에도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대법원이 마음을 먹으면 불가능한 일정은 결코 아닙니다.


2. 대법원이 대선 전에 선고 내린 것은 이재명 죽이기의 대선 개입이다?


대선 한 달 전에 선고 내린 게 대선 개입이면, 대선 직전에 선고를 내려도 대선 개입일 텐데, 그럼 사실상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데 불리하면 죄다 부당한 개입이라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 유죄 취지 최종심에 기속 되는 파기환송심이 마무리되면 그에 따라 대통령 당선이 무효가 되어버릴 텐데, 그럼 그때에도 부당한 정치 개입이라고 주장할 겁니까? 그럼 도대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하는 것 외에 부당한 정치 개입을 하지 않는 경우의 수는 뭡니까?


대한민국 사법부가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마음대로 정해놓고 골라서 받아오는 곳입니까? 본인의 죄질에 따라 본인에게 불리하게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재명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야당 인사가 공개적으로 사법부 폐지를 주장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이게 윤석열 탄핵에 국민 저항권 발동으로 불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광훈과 질적으로 뭐가 다른 주장입니까?


윤석열이 정치 검사들을 이용해 이재명을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한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건 일차적으로 본인 책임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는 데만 혈안이 되어 방송에서 "김문기와 골프 친 적 없다"거나 "국토부로부터 협박받았다"는 취지의 거짓말을 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그랬더라도 1심부터 일관되게 법리적으로 하등 효력이 없는 '검찰의 정치적 수사·기소'라느니 같은 선동적 주장이나 하며 무죄를 주장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한 뒤 형량을 다퉜다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일을 여기까지 막장으로 끌고 온 건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의 선택이었습니다.




이재명은 당장 지지자 선동을 그만둬야 한다


본인도 법조인이니 이 모든 사정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명백한 거짓을 본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유포하고 있는 것이고 지지자들을 혹세무민 하는데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하간 이재명은 단 일말의 잘못도 없고 이 모든 게 대한민국 기득권 엘리트들이 상식과 절차를 무시하며 이재명을 부당하게 탄압하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그 지지자들이 가진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 무도하게도 한국 사회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고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본인이 정치적 궁지에 몰릴 때마다 지지자들에게 거짓과 왜곡된 현실 인식을 퍼뜨리면 지지층이 급진화되고 과격해집니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그러한 지경인데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식으로 지지층을 다지고 와해를 막는 건 본인에게는 이득이 될 겁니다. 근데 대한민국에는 치명적으로 해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더욱 양극화된다면 대화와 합의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민주주의의 정신과 그 토대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재명은 지금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팔아먹고 있는 셈입니다.


보수 진영이 극우화되고 끝내 계엄령 선포로 나라를 "반병신" 만들어 놓은 건 원래 그런 막장인 애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진보 진영까지 이런 식으로 정도를 못 지키고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태도를 내던지면 국민들은 대체 어느 정당의,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 겁니까? 대한민국은 이재명이 없다고 망하는 나라도 아니고, 민주당도 이재명의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폭파되는 정당이 아닙니다. 좀 사태를 길게 멀리 내다보면 안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고, 당선 무효 리스크가 사라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이 아작이 날 걸 뻔히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저 한숨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p.s. 추신


출처 : 네이버 MBC 뉴스 댓글 갈무리


대체 이게 뭡니까? 지지자들이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오해로 사법부 전체를 공격하고 있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자제를 요구하긴커녕 오히려 부추기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선동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참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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