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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n 15. 2020

시절과 기분

이렇게 극과 극의 평가라니!

이번 책은 <여름, 스피드>로 이름을 알린 게이 소설가 김봉곤의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이다. 작가는 문학동네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첫 책은 문학동네에서, 이번 책은 창비에서 출판했다. 총 6편의 소설이 들어가 있는 이 단편집의 소재 및 주제는 남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첫 책과 이번 책의 표지가 아름다운데, 표지 그림을 작가가 선정했다고 한다. 편집자 출신이라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나오지 않았겠냐는 추측이 오갔다.

Q 전체적인 감상평,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윤 _ 한두편만 퀴어 작품일 줄 알았다가 전체가 다 퀴어작품이라 당황했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로 읽으니 좋았고, 평자들의 '아름답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연애의 기분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일부러 더 까발려서 쓴 느낌이었다.

정 _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게이판 사랑의 체험수기'. 과연 소설이라 할 수 있나? 나는 왜 남의 일기장을 읽고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퀴어라는 특징이 없다면 귀여니의 소설 정도로 느껴진다.

진 _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김봉곤의 인생(연애)극장'. 사실 작가의 생김새를 알고 봐서 힘들었다. 얼굴을 몰랐다면 흠뻑 빠져 읽을 수 있었을텐데... 처음엔 버거웠으나 뒤로 갈수록 나아졌다. 찾아보니 이렇게 경험담처럼 쓰는 소설을 오토픽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옥 _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항상 호기심이 있다. 내 연애는 적극적이지 못했는데, 이 작가는 적극적으로 연애를 하고, 낱낱이 기록해서 이런 글을 남겼다. 읽으면서 내 지난 연애에 대해 반성했다.

포 _ 이 소설에 나와 있는대로 말하자면 파졸리니의 취향을 알기 위해 그의 영화를 전부 다 볼 필요는 없다. 소돔의 120일만 보면 된다. 마찬가지로 이 작가의 글을 알기 위해 굳이 이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영 _ 이미지나 감각을 표현하는데 재능이 있는 작가다. 과거의 종로 거리라든가 대학 캠퍼스, 학창시절, 여름날의 기억 등을 불러 일으키는 데는 독보적인 것 같다. 

Q 이 책을 읽고 떠올랐던 시절이나 기분이 있다면?

옥 _ 영화 일을 하다보면 한예종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이 왜 그런지, 특성을 알게 되었다. 

영 _ 희미해졌던 20대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종로에서 놀았던 기억 같은 것들.

진 _ 일상적인 장면을 디테일하게 기억하는 작가다. 전에 대학 친구 넷이서 학교에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정 _ 주인공이 한예종에 가서 종인선배 플래카드 보는 장면에서 내가 30대 후반에 대학 갔을 때 교수실 명패에서 선배(함께 북치고 장고치던) 이름을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이미지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천부적이라는 평가에 영, 옥, 진, 윤이 동의한 반면,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포와 정이 울부짖었다.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다. 인사동 커피빈, 종로 뎀셀브즈, 종로 빠이롯트 빌딩 등이 차례차례 소환되었고, 왜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지에 대해 포는 이렇게 진단했다.

그 시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종로나 뎀셀브즈에 가지 않는 사람들,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다는 사람들은 일주일 전에도 이 소설에 나오는 곳들을 쏘다닌 사람들이라고. 아...과연 그런 것이었나?

디테일하고 일기장 같으면서도 사랑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는 사람이 2/3,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아니라 일기장 같았다는 사람이 1/3이었다.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임에서도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Q 퀴어 소설이나 영화에 열려있는 편인가?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퀴어소설을 더 읽어볼 예정인가?

윤 _ 자주 보는 편은 아니라서 박찬욱의 <아가씨> 정도가 기억난다. 소설은 이거 한권으로 족하다.

정 _ 본격 퀴어물로 처음 본 건 <후회하지 않아> 였고, 내가 여자다 보니 게이보다는 레즈비언쪽이 더 끌린다. <윤희에게>, <캐롤> 같은 작품. 소설로는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 추천한다. 김봉곤 소설보다 훨씬 낫다. 박상영의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만 볼거다. 김봉곤은 내 취향 아니다.

영 _ 요즘 김규진이라는 오픈리 레즈비언 유부녀가 뜨고 있다.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불법이라 미국 가서 결혼을 하고 온 여자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도 사 읽었다. 계속 비슷한 이야기들인데 다음 책까지는 읽어볼 예정이다. 다음에도 똑같으면 앞으로는 안읽겠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궁금하다.

진 _ 우리는 학창 시절 팬픽으로 단련된 세대라 동성애에 편견이 없었는데,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편견이 생길 지경이다. 팬픽으로 동성애를 배웠다는 건 판타지이고 부작용이 크다. 생활의 일부로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 <여름, 스피드>는 사놓고 아직 안 읽어서 읽어볼 예정이고, <시절과 기분>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소장하고 싶어서 살 예정이다. 정 언니가 추천한 <항구의 사랑> 한번 읽어보겠다. 

포 _ <숏버스>. 안 읽겠다.


Q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차별을 한 적이 있는지?

윤 _ 50대 이상의 남자 노인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특히 경상도 남자 최악이다. 함께 근무하면서 스마트했던 40대 팀장이 50이 되더니 달라지는 걸 보면서 편견이 더 심해졌다. 나는 사실 '꼰대'라는 말도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건 애정이 전제된 말이니 그 말 안썼으면 좋겠다. 태극기 부대를 비롯 주변 사람들을 통해 혐오스러워진다는 데이터만 쌓이고 있다. 제발 한 명이라도 괜찮은 어른 남자를 만나고 싶어! (이에 정이 강화도 성공회성당의 김성수 주교님을 한번 만나보라 했고, 옥이 넷플릭스의 <두 교황>을 추천했다.)

옥 _ 돈 밝히는 친구에 대한 혐오가 있다. 같은 친구 그룹 내에서 왕따를 시킬 정도였다.

진 _ 90년대 생에 대한 혐오가 있다. "요즘 애들은 다 저러냐?"는 말을 달고 산다.

 


날짜 _ 202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발제책 _ <시절과 기분> (김봉곤 | 창비)

참석자 _ 영, 윤, 옥, 정, 진, 포 (6명)

장소 _ 브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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