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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성공 신화의 정책 기반

완벽한 창작의 자유를 얻다

1부 K-드라마 성공 신화의 정책적 기반


한국 드라마(K-Drama)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글로벌 미디어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선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 외부 환경, 그리고 사업자의 능동적인 대응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1부에선 가장 먼저 정부의 정책이 가져온 '외부 효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 대목은 조금 논쟁적일 수 있습니다. 한국 한류학자의 상당수는 한류의 성장정부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는 입장이 강합니다만, 정부 홍보 등을 통해 한류를 접한 외국의 한류 학자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니 말입니다.


둘 다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오늘도 정부는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서 마켓을 열거나, 직접 지원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교류재단 등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서 한국 콘텐츠를 알리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류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에 대해서 정부가 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이 있고 난 후에 정부 지원정책이 나왔다고 한다면 둘의 이야기는 모두 맞는게 되는 거죠. 즉, 정부가 나서서 한국 영상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해외 진출이 이루어지고 나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했으니 말이죠. 지금도 정부는 자막을 지원하고 더빙을 지원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말을 던지고 나면 헷갈리실 겁니다.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성장을 이끈 요인으로 정부 정책을 논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엔 직접 지원이 전부는 아니죠. 누구의 말대로 뭘 할래도 여건이 되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깜냥이 되지 못하면 할 수 있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잖아요. 아마도 정부 정책은 그 깜냥을 만드는 토대는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제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시고 최종 판단을 하시면 어떨까요?


검열 폐지와 새로운 창작의 시작


K 드라마의 성공을 이끈 첫 번째 시작을 전 국가 권력에 의한 사전 검열(Prior Censorship) 제도의 폐지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의 자유를 옥죄던 정책적 족쇄가 풀리면서, 한국 드라마는 비로소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고 사회적 금기를 깨트릴 수 있는 내러티브 파워(narrative power)를 획득했습니다. 검열 폐지야 말로 K-드라마의 서사적 깊이와 장르적 다양성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킨 근본 동력이었다는 것이죠.


사전 검열의 해체는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누군가가 결단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70~80년을 관통했던 민주화 운동의 성과와 헌법 기관의 판단이 맞물린 결과고,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사전 통제 기능의 해체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시작은 1987년 헌법 개정이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의 결실로 개정된 제9차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 제2항을 통해 국가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방송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 콘텐츠에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의 근본적인 약속이자, 정치권력의 미디어 통제가 사실상 종언을 고했음을 선언하는 역사적 조치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물론 헌법이 사전 검열을 금지했다고 해서 사회가 바로 반응을 보이진 않습니다. 숨어 있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저항을 하는 법이니까요. 실제로 미디어 분야에서는 기존 법률의 모호한 조항을 통해 사실상의 검열이 한동안 잔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잔재가 해소된 것은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 1987년부터 무려 10년이 지난 1996년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위헌 결정들 덕분이었습니다.


https://casen헌법재판소/94헌가6ote.kr/


헌재는 영화와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가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며 문화 예술계 전반에 걸쳐 국가 권력의 사전 통제에서 해방되는 상징적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가 국가 기관의 '사전 심의'를 위헌(Unconstitutional)으로 명확히 규정하면서, 창작 활동은 더 이상 국가가 임의적으로 허가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영역으로 확고하게 편입되었습니다.


방송은 조금 달랐습니다. 방송은 헌법적 금지의 정신을 따라 사전 검열에서 사후 심의(Post-facto Review)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거쳤습니다. 1987년 이후 2008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독립적인 민간 기구로 출범하기 전까지, 심의 기능은 주로 방송위원회를 통해 사후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방송은 제작진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먼저 송출된 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규정에 근거하여 심사되었습니다. 2008년 방심위 출범 이후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현행 사후 심의 체제가 최종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적 과정을 통해, 한국 드라마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제작하는 사전 검열 체제에서, 일단 자유롭게 제작하고 방송한 후 규정 위반 시 책임을 지는 사후 심의 체제로 완전히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검열 폐지가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진출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생각보다는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방송인들의 머릿속을 해방시킨 것이니까 말이죠. 창의력은 현실을 비틀고, 뒤트는데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구요.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자유. 그러기에 순응은 창의력의 반의어에 가깝죠. 검열 폐지는 오랜 기간 우리를 구속했던 움츠림을 없애버린 단칼이었습니다. 적어도 문화 영역에서 규모와 자본을 모두 가진 중국이 한국을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도 이 검열 문제 때문이죠.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의 등장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명의 눈동자>(1991)나 <모래시계>(1995)는 사전 검열 체제하에서는 결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원천 봉쇄되었을 테니까 말이죠.

<여명의 눈동자>가 어떤 드라마였을까요? 이 드라마는 제주 4.3 사건과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 해방 후 좌우 이념 갈등을 다룹니다. 그동안 정부가 ‘국가안보’, 사회혼란 방지’라는 명목하에 철저히 통제하고 은폐했던 주제들인 거죠. 특히 4.3 사건처럼 수십 년 동안 언급조차 금기시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것 자체가 검열관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반체제적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모래시계>는 또 어떤가요. 이 드라마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관통합니다. 군부 독재의 폭력성과 정치권력의 부패를 직접 다루고 있죠. 사전 검열관이 있었다면 대본 심의조차도 통과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사후 심의 체제로 전환된 덕분에 제작진은 국가 기관의 승인 없이 자신의 비전을 담아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었고, 이 드라마들은 금기시되던 현대사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끌어내 국민적 공론화를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금기의 벽이 무너지자 드라마의 장르와 내러티브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문제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대를 관통하고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대하 드라마이기 때문에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시대적 금기를 최초로 다루고 있기에 그 상징성에 걸맞은 제작비가 투입되었던 것이죠. 국내 최초로 에피소드당 1억 원을 돌파한 최초의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검열 폐지는 우리의 머릿속을 해방시켰고,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블록버스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이후 검찰, 경찰, 정치인, 언론의 부패를 다루는 시사/고발 전문직 드라마가 등장할 수 있는 내러티브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어둡고 불편한 현실의 단면을 깊이 있게 다루는 서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야말로 K-드라마의 서사적 깊이를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한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새로운 과제의 등장, 자율규제


물론 검열의 폐지가 완전한 창작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후 심의 체제는 강력한 제재를 통해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딜레마를 안겨주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이 송출된 후 선정성, 폭력성, 언어 사용, 공정성 등을 기준으로 심의하며, 위반 시 '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심지어 '시청자에 대한 사과' 등 법정 제재를 내립니다.


이러한 강력한 사후 제재의 위험성 때문에 제작진은 제재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수위를 낮추는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이라는 새로운 딜레마를 낳았습니다. 법정 제재가 내려질 경우 방송사는 시청률 감소에 따른 광고 수익 감소대외적인 이미지 실추를 피할 수 없으며, 이는 담당 PD나 작가의 인사상 불이익으로 직결됩니다.


따라서 제작진은 폭력 장면 모자이크 처리, 비속어 사용 자제, 사회 비판적 내용의 순화 등 방어적인 제작을 일상화하게 된 것입니다. 21세기 넷플릭스가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면, 국내 방송사들은 여전히 자율규제라는 딜레마에 갇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검열 시대의 '제작 금지' 공포가 사후 심의 시대의 '제재 리스크'로 전환된 것만으로도, 한국 드라마는 스스로 숨 쉬며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결정적인 정책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전 검열 시대에는 아예 시도조차 불가능했던 주제들이 이제는 '심의를 받는' 논란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창작 환경의 질적인 도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사전 검열 폐지가 오늘날 K 드라마의 글로벌 성공을 가능케 했던 첫 번째 제도적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또 뭐가 있을까요? 그건 다음 주 목요일에 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영상산업의 성공 비결>(The Secret behind Global Success of K-Drama)는 매주 찾아옵니다.

서문: K-영상산업의 성공신화: 그 비밀을 파헤치다

Part 1. K-드라마 성공 신화의 정책 기반

1. 검열폐지, 창작자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다.
2. 3% 나비효과, 외주 제작 의무화 정책이 산업을 만들다
3. 보도 권력을 통제하려다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다

Part 2. K-드라마 성공을 이끈 내외 환경
1. 들끓는 욕망이 이끈 TV 시대
2. 절망의 겨울, 역설의 싹이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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