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운동 축구.
저는 지금은 건장한 체격이지만 어릴 적에는 의외로 약한 몸이었다고 합니다(부모님 피셜). 미숙아로 세상에 나와 골골댔었는데, 아버님이 한라산에서 산개구리를 잡아다 고아서 먹였더니 그때부터 막 많이 먹더랍니다. 그때 조금만 주시지.. 좀 건강해질 만 하니 또 교통사고를 당해 정강이가 댕강 부러졌었습니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 없는 어린이 자전거 타고 내려오다가 포터 트럭에 들이받았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 합니다. 두 가지가 기억이 나는데, 첫째는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그으으으으렇게 아프지는 않았던 것, 둘째는 다리가 부러진 느낌이 꼭 커다란 웅덩이에 다리가 빠진 것 같은 느낌, 이렇게 두 가지 생각이 납니다.
아무튼 이렇게 어릴 적 약했던 몸 때문에 한창 운동하고 활동적으로 보냈어야 할 초등~중등 시절을 그냥 쭈글이로 지냈습니다. 그때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나서도 운동장에서 공 하나 가지고 몇 시간씩 축구하면서 놀았는데, 저는 약했던 몸 걱정에 밖에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부모님 덕분에 매일 끝나면 어디 들리지도 않고 집으로 갔습니다. 가끔 친구들 사이에 깍두기로 끼어서 축구 좀 하고 들어갈라 치면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그렇게 그렇게 쭈글이로 그냥저냥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사관학교를 가니 정말 운동을 엄청 시키더군요. 사관학교 입교 전 기초 군사훈련을 하는 막사를 "Beast Barracks"라고도 하는데요, 정말 짐승처럼 운동(같은 훈련)을 시킵니다. 덕분에 학창 시절 그냥저냥 소심했던 쭈글이는 정말 강한 체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체력이 늘었어도 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구기운동입니다. 이게 공 가지고 하는 거의 모든 운동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테니스를 치면 늘 홈런이고, 탁구는 허공에 휘두르다 끝나고. 특히 군대에서는 축구를 잘해야 나름 인정을 받는다고 하던데, 축구하면 공 한번 못 만지고 끝나기 일쑤. 유전력도 없는데 자꾸 더 의기소침해져서 결국은 이런 구기운동을 점점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전역을 하고 민간인으로 살면서 축구를 한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축구 연습 동영상을 봤는데 혼자 지하주차장에서 연습하고 하면 그래도 한번 비벼볼 만한 것 같아서 드리블이나 슈팅 같은 것을 혼자 연습했습니다. 뭐 사실 혼자 거 지하주차장에서 볼 연습 몇 번 했다고 실력이 일취월장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연습하고 게임도 해 보니 예전처럼 공을 피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최근 몇 달을 부족한 실력이지만 한참을 재밌게 했었는데, 오늘 경기에서 좀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공을 찼는데 엉뚱하게 날아간 것을 보고 축구 잘하시는 어느 분(무려 군종목사) 께서 비웃으시더라고요.
'차는 것도 엉뚱한데, 그마저도 휘어져 날아갔네요~ 큭큭큭"
왐마. 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뒤에서 다 들리게 저런 말을 성직자가 한다고? 옆에서 킥킥대고 있길래 쳐다봤더니 스윽 가버리더군요.
'맞습니다. 저 개발 맞아요. 어릴 적 운동 배울 때 못 배워서 운동감각이 좀 모자랍니다. ㅋㅋㅋ'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말이 아니라 몸으로 말해줬습니다. 딴사람은 몰라도 목사님 공은 걷어내겠다. 아주 그냥 운동장 여기부터 저기까지, 아니 집까지 죽기 살기로 쫓아 가겠다는 각오로 경기를 했습니다. 아주 진하게 몸의 대화를 해드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축구 레슨을 받으려고요. 뭐 지금 연습해서 경기한다고 어디 조기축구회 같은데라도 나갈 실력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하는 축구에서 비웃음은 안 당하겠지요.
아 진짜 어릴 때 배워둘걸. 나만 빼고 다 잘해 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