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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Nov 11. 2019

요가원 찾아 삼만리

스페인에서 요가하기1



한국에서 2년 동안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중 하나는 아쉬탕가 요가를 시작한 일이다. 아쉬탕가 마이솔 수업을 듣고 싶어서 옮긴 요가원에서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뻣뻣한 내 몸 많이 열렸다. 올 상반기에는 좀  소홀해지기는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요가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무리하지 말고 좀 느슨하더라도 평생 요가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도 했다. 



딱 일 년 채운 요가원의 마지막 수업 날 사바아사나(송장자세)가 끝나고 눈을 떠 보니 머리맡에 웬 쪽지가 붙은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사방을 살피다 선생님과 눈을 딱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하셨다. 마지막 날이라고 선생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그것도 무려 만두카 핸드 타월을.



요가원 첫날 들은 수업의 선생님이자 마이솔 때 제일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어 좀 무리한 스케줄임에도 시간을 빼서 간 날이었다. 선생님께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 나도 편지와 선물을 준비해 갔던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며 그동안 감사했다 말씀드리니 처음 왔을 때보다 몸 많이 부드러워졌으니 가서도 계속해서 수련하라고 꼭 안아 주셨다.



한 날 친구에게 내가 좋아한 요가 선생님 수업 마지막 날에 선물을 준비해 갔더니 선생님도 선물을 준비하셨더라 얘기했더니



"사람은 참 누구 싫어하는 것도 다 티나지만 누구 좋아하는 것도 귀신같이 티 난다니까"



라고 해서 폭풍 공감했다.



스페인에 가서도 요가 수련을 이어가고 싶어 출국 전부터 말라가 요가원 있는지 깔짝깔짝 찾아봤다다. 평생 쓰려고 산 만두카 요가 매트랑 매트 타월, 그리고 요가복도 다 챙겨왔지! 다행히 살고 있는 동네를 기준으로 마이솔 수련할 수 있는 곳도 하나 있고 아쉬탕가 일반 수업을 하는 곳도 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정돈되니 이제 요가를 시작하고 싶어서 다시 본격적으로 요가원을 검색했다. 오전 마이솔 수업은 시간이 안 맞고 아쉬탕가 수업만 하는 요가원이 있길래 페이스북 메시지로 문의하고 엊저녁 요가원을 찾았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여기가 맞는데 간판도 없고, 빼꼼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니 요가원 분위기는 아니다. 여기가 아닌가? 다시 내려가서 길 이름을 확인하고 요가원 주소도 봤지만 여기 맞는데. 올라가 노크하고 슬그머니 들어거 요가원 아니냐고 물어보니 여기서 요가 수업하는 건 맞는데 오늘은 그 선생님이 다른 요가원에서 수업한단다. 



왓?



무슨 요가원이 이래? 



그제서야 온갖 운동 도구들이 즐비한 내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일반 체육관이다. 어제 페이스북에서 문의했을 때 오늘 갈 거라고 했는데 그때 좀 알려주지. 한번 땀 젖으면 벗기 엄청 힘든 요가복까지 입고 걸어왔는데! 허무한 건 둘째치고 뭔가 의욕이 한풀 꺾였다. 여기까지 나온 게 억울해 더 걸어 항구로 나가 하릴없이 해지는 거나 구경하고 돌아왔다. 결국 요가는 못 했지만 만 육천 보를 걸었다.



수업 당일 전날 일로 의욕에 김이 좀 빠진 상태라 갈까 말까 좀 고민했다. 어차피 그 근처 시장에서 장 볼 예정이었으니 겸사겸사 트롤리에 요가 매트를 담아서 나갔다. 오늘은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요가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체육관 구석 자리에 일곱 개 정도의 요가 매트가 깔려 있었다. 들고간 매트를 그 사이에 깔았다. 요가 안 한 지는 한 달 반이 넘었고 아쉬탕가 안 한 지는 더 오래돼서 긴장한 상태로 매트 위에 섰다.



아쉬탕가가 참 좋은 게 정해진 시퀀스를 반복해서 수련하니 언제 어디에서 해도 똑같이 이어 수련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기억을 못해도 몸이 순서를 기억해줘서 나름 순조롭게 흘러갔는데,  그간 체력 많이 떨어져 수리야 나마스카라 B부터 차투랑가 단다아사나 할 때 무릎 대고 하기 시작했고....



선생님이 카운팅을 전혀 안 해서 당황하고, 교정이 엄청 터프해서 놀라고, 마지막 옴 찬팅할 땐 지금까지 들어 본 어떤 '옴'보다 우렁차서 다시 한번 놀랐다. 



1회 시범 수업으로 15유로 드리고 나왔는데 소감은 음, 뭐, 그냥 그랬다.



카운팅이 없어서 전반적으로 너무 빨랐고 선생님한테 크게 신뢰가 안 느껴진달까. 아쉬탕가를 할 거면 내 호흡에 맞게 저녁에라도 마이솔 수업을 듣는 게 나을 거 같고, 일반 수업을 들을 거면 빈야사나 하타수업 하는 곳에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



그래도, 일단 요가 스타트는 끊었고 오랜만에 땀 흠뻑 흘려 개운한 하루였다. 집에서 요가복 벗다가 욕 나올 뻔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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