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영유아 엄마들에게는 한 분류의 천적이 생긴다. 그들은 바로 길거리나 공공장소 등 어느 곳에서나 갑자기 나타나 참견의 말을 늘어놓는 중년 여성들이다. 이들은 감쪽같이 평범한 우리네 어머님, 할머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겉모습만으로는 그가 참견쟁이인지 아닌지 분간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당하는 이 입장에서는 참견당하는 이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벌어지는 한 편의 참극이다. 그들은 영유아 아이들이 추위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고, 무척이나 걱정하신다. 왜 그들에게만 이런 정서가 존재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2월에 태어난 나의 아이는 겨울도 봄도 아닌 애매한 계절에 우리 집에 당도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신생아들에 비해 얼굴이 빨갰다. 태열 때문에 얼굴과 몸이 울긋불긋한데도 병원과 조리원에서는 내내 두툼한 천보자기에 꽁꽁 싸여 있었다. 엄마 눈에는 그 모습이 자못 안쓰러웠다. 집에 와서는 매쉬소재의 아이를 감싸는 육아용품으로 대체했다. 아이의 팔다리를 자유롭게 둬도 괜찮을 즈음엔 봄이 완연했고, 그땐 거의 팔다리를 다 내놓은 바디슈트만 입혔다. 긴 옷을 입혔더니 얼굴과 몸에 울긋불긋하게 태열이 올라와 어쩔 수 없었다. 거의 헐벗다시피 한 아이 사진을 시부모님께 보내드리면 시어머니는 아이 옷을 너무 춥게 입힌 것 아니냐는 걱정의 말씀을 꼭 하셨다. 태열이 올라와 어쩔 수 없다고 매번 설명했지만 시어머니의 걱정은 반복됐다. 좋은 말이라도 계속 듣다 보니 잔소리 같고 꾸중 같이 느껴져 나는 점점 그 말을 피하고 싶었다. 갈수록 아이 사진을 잘 보내지 않게 되었고, 가끔 사진을 보내더라도 긴 옷으로 바꿔 입힌 후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해 초가을 즈음이었다.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집 근처 야외 벼룩시장에 갔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점심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뜨거운 여름 햇볕이 세상을 적시는 계절이었다. 그래도 가을이라는 명목이 있으니 나는 아이를 겉옷까지 챙겨 입히고 양말까지 꼼꼼히 신겨 유아차에 태워 나갔다. 한낮의 벼룩시장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어 꽤나 더웠다. 나는 옷 안으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행여나 아이가 덥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나는 아이 겉옷을 벗기고 양말도 벗겼다. 그렇게 해도 무리 없이 따뜻한 날씨였다. 한 매대 앞에서 유아차를 곁에 두고 제품을 구경하고 있는데, 할머님 한 분이 유아차를 들여다보시고는 아이 양말도 안 신겼다고 나를 나무라셨다. 나는 당황해서 양말을 신겼었는데 날이 덥길래 양말을 벗겼다고 줄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그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중얼거리셨다. 결국 나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는데 왜 그러시냐고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나는 나 자신이 길거리에서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마 그때는 출산 후 안정되지 않은 호르몬으로 인해 더 분노를 참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세 살이 된 지금도 그들은 대뜸 날 찾아온다. 지난해 11월 초였다. 아이 감기로 인해 동네 병원을 가야 했다. 날이 제법 쌀쌀한데 아이는 킥보드를 타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날이 추우니 며칠 전 새로 산 끈 달린 벙어리장갑을 끼고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이는 내 말을 거절했다. 나는 아이에게 킥보드를 타려면 장갑을 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갑을 끼면 운전이 원활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이는 쿨하게 알겠다고 하고서는 세상 신나게 맨손 킥보드를 탔다. 병원에 도착하니 키오스크 접수 대기줄이 길었다. 나는 접수를 하기 위해 줄을 섰고, 아이는 TV를 보겠다고 먼저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마침 아이 옆에 있던 어머님이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거셨다. 그러더니 곧바로 아이 손을 잡고는 손이 왜 이리 차갑냐고 야단이셨다. 아이가 그분에게 킥보드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그분은 이 추운데 킥보드를 탔냐고 하시며 본인의 두 손으로 아이 손을 폭 감싸 쥐시고는 연신 입김을 부셨다. 나는 접수를 끝내고 아이 옆에 앉았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이 손이 왜 이리 차갑냐고 여러 번 말하셨다. 이미 아이에게 설명은 다 들으셨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대체 내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도 알 길이 없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대답은 결코 그분 마음에 들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한창인 12월 중순에도 나는 길거리에서 또 한 명의 천적을 만났다. 정오를 넘어서는 낮이었고, 나는 아이와 함께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나갈 때만 해도 나는 아이에게 귀마개도 씌우고, 목도리도 둘러주고, 마스크도 해주고, 장갑도 끼워줬다. 그런데 마트에서 나오는 길에 아이는 온갖 것을 다 거부했고 겨우 설득 끝에 목도리와 마스크라도 하게 했다. 그마저도 아이가 뛰어다니느라 목도리가 다 풀려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지나가시는 분이 흘린 목도리를 주워주셨고, 나는 뛰어가는 아이를 불러 세워 목도리를 다시 둘러주려고 했다. 그때 지나가는 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어유. 엄마는 장갑을 꼈는데, 아기는 장갑도 안 꼈네. 아기 춥겠다." 그분은 내 귀에만 들릴만한 목소리로 이 한 마디를 남기시고는 바람처럼 쌩 지나가셨다. 나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목도리를 안 하려는 아이에게 호통을 쳐서 억지로 하게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소리는 언제 어디서는 듣잖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남편에게 그 일에 대해 하소연하듯 이야기하는 나를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닌 듯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억울하고 은근히 화가 났다.
내 아이는 신생아 시절 태열도 모자라 지금은 너무 더울 때면 두드러기가 생긴다. 처음에는 원인을 몰라 스테로이드제까지 처방받아 먹였었는데, 자세히 보니 많이 더울 때 울긋불긋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시원해지면 금세 잦아들었다. 그로 인해 아이는 탕목욕도 못한다. 두꺼운 겨울 내복은 사다 줘봤자 덥다고 벗어던지기 일쑤이고, 겨울 기온이 영상으로만 올라가도 패딩마저 거부한다. 엄마인 나도 놀라울 정도로 몸에 열이 많은 아이다. 이런 이야기를 매번 구구절절할 수는 없기에 나는 잘 모르는 분의 참견 앞에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다. 다 아이를 걱정하시고 예뻐하셔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거 잘 안다. 그러나 대뜸 던지는 말로는 그 속에 깊이 담긴 염려의 마음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염려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말해주시면 좋겠다.
나는 아직 세 살 아이의 엄마일 뿐이고, 나에게는 그들을 대적할 어떤 뾰족한 무기도 기술도 없다. 언제까지 나는 천적에게 공격당하는 상대적으로 열세한 존재가 되어야 할까. 내가 그들만큼 나이가 많아지면 그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때 즈음이면 내게 챙겨야 할 영유아가 없을 테니 더 이상 그들의 먹이사슬 안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들만큼 나이 지긋한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또 다른 영유아 엄마들의 천적이 되지 않는 것, 그뿐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