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자존감을 보다
요즘 육아서적을 보면 제일 눈에 띄는 단어는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이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 큰 어른은 이미 자아가 형성되어 자존감을 찾고 회복하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은 스펀지 같아서 주변 환경의 모습을 여과 없이 흡수하고 반응합니다.
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내가 못 봤던 아이의 모습이 나오면 순간 깜짝 놀라게 됩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다가 이런 이런 태도가 아이에게 혹시나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을지, 마음의 상처를 입진 않을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훈육을 하거나 마음속 불안을 다스려 보기도 합니다.
"아이의 행동과 결과에 어른처럼 너무 엄격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가 떼를 쓰면 감정이 억제가 안되어서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낸 적도 있어요. 그때 섬찟한 것 같아요. 나를 그렇게 혼내고 다그치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서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올 때면 나에게 주는 강한 채찍질이자 서글픈 고백처럼 들립니다. 엄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묘한 슬픔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슬프지만 닮기 싫었던 엄마의 모습을 육아라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왜곡된 양육방식은 대물림되니까요.
내가 부모님한테 어떤 방식으로 양육되었는지 어린 시절 어떠한 상처 때문에 자라오면서 힘들었는지 알기 때문에 내 자식에게는 그러한 상처를 주기 싫은 것이 또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내 부모처럼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상처를 똑같이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걱정과 훈육이 지나쳐 아이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못 이룬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기도 합니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이를 통해 부모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심하게 화를 내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일어납니다.
이렇게 배에서 열 달을 넘게 품고 내 생명을 다 주어도 모자란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나도 제일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나올 때면 조바심이 납니다. 어디서 이런 나쁜 버릇을 배웠는지, 좋은 것만 보고 배우기도 모자란데 왜 자꾸 맘처럼 아이가 따라주지 않는지 속이 상합니다. 다 잘 키우려고 하는 건데.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제일 먼저 사회화의 대상이 되는 것도 부모이니까요. 부모의 DNA는 자식에게 그대로 유전됩니다. 성격과 습관, 감정, 신체적 특징까지 엄마, 아빠에게 물려받습니다. 물론 100% 전부 다 자식에게 유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성격 인자를 물려받게 됩니다. 그 특정인자에 자존감도 포함되어 아이에게 유전되는 걸까요?
아이의 자존감은 굉장히 일찍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 서서히 자아상이 만들어집니다. 내가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과 태도가 모습이 아이의 자아상이 되고, 자존감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모델링(modeling)이라고 합니다. 아이의 성품은 부모의 심리적인 태도와 모습을 모델링하여 성장합니다. 이런 중요한 모델의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모방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또 자신의 자녀에게 부모와 동일한 방식으로 양육하겠지요. 이렇게 자존감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문제는 부모의 내면의 모습이나 양육의 태도를 본인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다는 점입니다. 문득 드는 위험 경고는 감지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이러한 양육태도를 보이는 나를 먼저 돌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내가 부모에게 받은 모성의 태도나 양육의 방식, 감정의 모습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입니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에게 충분히 충족되었는지 나의 성격이나 양육에 있어서 어떠한 모습으로 표출되는지 알게 되면 아이에게 주고 있는 감정의 모습과 양육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여기서 잠깐, 양육의 과정이나 모성애의 모습은 어떤 게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마다, 엄마마다 모습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내 양육의 태도에 있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다음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인 나를 감싸주는 것입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닙니다.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있어서 아이의 잘못된 모습까지 웃으면서 감싸줘야 하는 부처 같은 존재는 더군다나 아니고요. 엄마도 힘이 듭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출산하고 양육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기는 너무나 험난합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24시간 붙어서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멋진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거울을 보면 여자도 아닌 육아에 지친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란 듯이 아이도 잘 키우고 성공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합니다. 이런 엄마는 누가 위로하고 어디에 기댈까요.
이러한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부담감을 만들고 아이에겐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열등감을 만듭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아이와 부모는 불안감이라는 연결고리 안에서 계속해서 돌게 됩니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이와 나를 힘들게 합니다. 워킹맘의 경우는 일과 아이, 집안일까지 다 놓치지 않을 거라는 태도로 전력질주를 하게 되면 더 힘들게 되는 거죠. 그냥 애만 잘 돌봐도 힘든데.
또 아이를 기죽게 하기 싫어서 자존감을 잘 키워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존감을 만들어 주는 데 있어서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는 없습니다. 자존감은 아이와의 꾸준한 눈 맞춤과 공감, 부모와의 모든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완벽한 엄마, 부모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일관성 있는 양육 태도와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듣고 반응하고 이야기해주기를 통해 아이와 교감을 하는 좋은 엄마, 부모가 돼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선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아이가 한 행동에 칭찬을 해주고 "정말 잘했다, 수고했어. 힘들었지?"라고 말하면 아이는 내면의 나를 인정하는 힘이 자라게 됩니다. 행동에 대한 인정과 칭찬도 중요하지만 아이 존재 자체로 수용하고 안아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 자식이란 이유만으로도 엄마, 아빠는 널 사랑하고 지지하고 신뢰한단다"라는 태도가 필요한 거죠.
나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자랍니다. 감정적으로 결점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심리적 결점이 있고, 어린 시절 감정에 대한 결핍이 있더라도 그 모습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첫걸음. 그다음 그런 왜곡된 양육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았는지 자가 점검하는 모습이 있다면 엄마의 좋은 자존감은 아이에게 설명하고 보여주지 않아도 닮게 됩니다.
부모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아이를 대할 때에, 아이의 눈을 보고 공감하고 들어줄 때 아이는 부모의 좋은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엄마의 나쁜 관습과 우울한 감정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건강한 자존감을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
오늘부터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나를 이해 볼까요? 그리고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는 걸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심리상담 메신저 트로스트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마음이 행복한 삶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모두가 늦지 않은 때에 마음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