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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민 노무사 Mar 08. 2018

<사마의: 미완의 책사> 5,6화 리뷰

중드로 보는 정치썰 - 사마의: 미완의 리뷰 (3)

오늘은 주인공이 사마의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커버 이미지를 사마의로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너무 감동해서, 코가 찡했다. 저 커버 이미지를 이야기하는 순간이.

이 드라마를 첫 번째 볼 때는 그냥 '아, 곽가가 죽는구나.' 했는데.

지금 전체 내용을 다 아는 상황에서, 명장면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에서 저 대사는...


왜 감동받았는지는 후술 하겠다.


이번 에피소드는 정치적으로 쓸만한 인재인 양수와 사마의의 다른 선택,

그리고 사마의의 꾀병, "다음"을 준비하는 조조 세력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사마의'를 상징하는 듯한 거북이가 등장하는 것도 여기서부터다.



1. 사마의: 그는 왜 코스프레를 해야 했나?


사실 극 중에서 사마의가 왜 갑자기 벼슬을 하지 않으려 하는지는 드러나긴 한다.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심증이 있는 사마랑 가문을 양표 가문과 함께 꼼짝 못 하게 묶기 위해 아들들을 조조의 곁에 둠으로써, 反조조 세력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사마의에게는 인질 역할의 강요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양수는 적극적으로 조조에게 자신의 의탁을 청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을 뽐냈다. 그래서 대국을 보는 사마의 vs 대국을 보지 못하는 양수의 구도가 처음부터 나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실 난 이 부분은 다시 보면서 좀 의아스럽기도 했다. 조비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마의가 정말로 정치에 관심이 없고 문외한이라고 하는 걸 믿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사마의가 조비에게 전한 시, 월단평에 나와 양수와 논쟁한 상황은 누가 봐도 정치적 꿈을 품은 자의 언행이었다. 아무리 인질이 되기 싫다 해도, 정치란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적 꿈을 품은 이에게 늘 가장 야속한 것은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포르투나(운) 여신의 변덕이다. 실천적 이성(프루덴챠)을 가진 군주의 비르투(덕, 역량)가 훌륭하면 이 포르투나의 여신을 때려눕힐 수 있고, 그럼 또 그런 군주를 포르투나의 여신이 좋아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얼핏 보기에 여혐적인 비유를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정치에 있어서 운은 언제나 변덕을 부리고, 따라서 완벽하게 '그림이 되는' 출사의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런 네체시타(상황의 불가피성)를 이해하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정치인의 자질이 있다 할 것이다.


이후의 형주 공방전에서 이런 '네체시타'를 조조에게 이해시킨 게 바로 사마의였다. '어쩔 수 없음'을 깨닫는다는 것. 인간이기에 그건 너무나 힘든 선택이다. 그래서 조조는 '조조'라는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있는 비르투를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다리까지 분질렀지만 결국은 다음 화에 승상부에 취직하게 되지 않나.


한 순간이라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더 좋은 순간이 오길 기다리면서.


아니, 한편으로 다시 생각하면 "좋은 출사의 순간"은 끝내 오지 않을 것을 깨닫고 승상부에 출사한 사마의가 대단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구도를 그리며, "언젠가 때가 오겠지", "내 판단이 맞으니까 언젠간 내게 좋은 기회가 올 거야."란 생각으로 버틸 때가 많다. 정치적 결단의 순간순간이 올 때마다, 그런 사람들은 늘 망설인다.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마키아벨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로마인들은 문제가 되는 것을 멀리서부터 내다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항상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다 문제만 커지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전쟁이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적에게 유리하도록 지연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필리포스와 안티오코스를 맞아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선수를 쳐서 그리스에서 그들과 전쟁하는 길을 택했다.

로마인들은 그 두 세력과의 전쟁을 한동안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또한 로마인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현자들(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당시 대부분의 인문주의자와 정치가들은 시간을 지연시키는 방법을 권했다고 한다.) 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즉 "시간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즐겨라. [사태를 관망하면서 시간을 벌어라.]"라는 격언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기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르투와 실천적 이성(프루덴쨔)에서 비롯되는 이로움을 몹시 좋아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가져오는 데, 선한 것과 함께 악한 것을, 악한 것과 함께 선한 것도 가져오기 때문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中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든 된다라는 말은 기실, 문제나 좌절을 맞닥뜨릴 때 인간이 겪는 회피 성향이 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다. 500년 전의 똑똑한 사람들도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사마의는 그러지 않았다. 결국 7화에서 그는 자신이 전혀 그리고 있지 않았던 정치적 상황에서도

승상부에 출사를 선택했다. "선수"를 친 것이다.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행복 회로"를 거부하기엔 결코 쉽지 않지만,

정치적 성공의 순간은 결국 그 행복 회로를 거부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대국"을 본다는 것, 사람을 쓰고, 키운다는 것.

명언이다.

"큰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양수의 "똑똑함 뿜뿜"에 조조는 기특해하는 듯한 인상을 내비친다. 인재를 영입했다는 티를 내며 기뻐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조비의 항변에 그는 반박하지 않고, 왜 그를 등용했는지 3가지 이유를 말한다.

즉, 그는 양수의 "교활하고 간교한 면"을 이미 파악하고 있음에도 등용한 것이다.


양수가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노력하고자 하는 순진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공정성'이 절대적이라 믿으며, 그 공정함에 대한 절대적 믿음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노력하면 결국 내가 뽑힐 거야!"라는 자원(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획득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조조는 양수가 똑똑해서 뽑은 것이 아니다. 조조는 양수의 혈통과, 그를 둘러싼 환경, 이로 말미암은 이용 가능성에 주목했다. "바둑돌도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양수와 비교해, 조조는 말한다.


바둑돌은 말이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더라도 내가 바둑돌에 휘둘릴지, 내가 휘두를지를 잘 봐야 해.


하나만 보고 "잔꾀나 부리는 애송이"를 등용한 게 아니라며...


조조만 그럴까?

사람을 뽑는 문제는 언제나 이와 같다. "실력"이 의미하는 건 정말 "실력" 하나일까?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현상을 흔히 "불공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채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의사결정권자의 마음이고, 의중이다.

내 실력'만' 보고 뽑지 않는다. 사람을 뽑는 데 "객관"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이유와 환경이 영향을 끼쳤든, 마음에 들어야 뽑는 것이다. 양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많은 이들이 "순욱"의 관점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어떤 바둑을 둘 지 잘 생각해야" 결국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바둑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바둑 두는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게 필요하다. 마음이란 무엇이고, 대국이란 무엇인가. 나의 다음 수는 그럼 무엇일까?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하고, 무엇을 계발해야 할까?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공정성" (1~2화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세간의 공정성은 정말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이 아니다. 극단적 기회의 평등에 훨씬 가깝다.) 이슈가 대부분 '바둑돌' 관점의 이야기들이라서 아쉬울 때가 많다.


"다음"을 준비하는 훈련. 우리 정치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6화에서 보면 조조는 이미 결론을 냈다. 그럼에도 조비와 조식을 시험한다.

물론 아들이니까 가능했겠지만, 나는 다음 사람에게 자꾸 숙제를 내주고 훈련을 시키려 하는 조조의 모습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나"가 중심인 정치에는 후계가 없다. 내가 잘 되는 게 급하고, 일단 내 주변이 뭔가 챙겨야 하는 정치는 다음 사람을 챙길 이유가 없다. 나 대에만 성과를 내고, 당선이 되면 되니까.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건, 우리 시대를 위해 준비하는 나의 어떤 '대업'을 어떻게 하면 이어갈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조조에겐 이것이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 나 대의 뒤를 이어서까지 뜻을 일굴만한 "대업"을 가진 것 같은 정치인이 보이는가.

슬프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동거 동락한 동교동계 이외에 신진 그룹들, 30대 초중반 (지금의 내 나이다.) 사람들을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탁하고 "다음 사람"을 양성했던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탁된 사람들 중에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도 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대중 자서전에 잠깐 등장하는 김한정 의원.) 문재인에게 정치를 권했던 노무현 대통령 외에는 별로 그런 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므로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키우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면, 그런 정치인의 속성을 극복해야 할 정도로 뭔가 하고 싶은 뜻, "대망"을 품고 있다는 말도 된다. 그게 참 멋있는 일이다.


'멋있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너무 오래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3. "잊지 않는다.", "절대 잊지 않는다."

<사마의: 미완의 책사> 6화 마지막 장면 中
<사마의: 미완의 책사> 22화 '인생무상' 中

6화 마지막 장면. 처음 이 장면을 볼 때는 그냥 아~ 죽는구나. 하고 무덤덤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2번째. 앞서 말했듯이 나는 감동했고, 울었다.


22화에서 조조가 술을 땅에 부었던 의미가 드러나니까. 그리고 이 드라마 시작 장면마다 나오는 이 술.

곽가를 위한 술이었구나.


조조는 곽가를 잊지 않았구나.

"잊지 않는다."란 말.

누구나 그렇다. 나를 잊지 않아주는 누군가. 그 사람에게 느끼는 감동. 나를 알아주는 구나.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 위지기자 사, 여 위열기자 용)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 사기(史記), 자객열전 中


예양이 남긴 말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진실이 담긴 말이다.

곽가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은 것이다.


6화의 마지막에서 22화의 연회 장면이 비로소 생각났다.


조조는 곽가를 절대로 잊지 않았구나.

"잊지 않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동 같은 것이 있다. 그 순간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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