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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Nov 12. 2022

독감 예방접종

219번. 대기인수 17명.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종합병원이라 환자가 가득하다. 다른 가족은 지난주 토요일에 소아과에 가서 독감 예방접종을 했다. 오늘은 우리 둘만 따로 독감 예방접종을 한다. 접수하는 데에도 내 번호가 될 때까지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내과 4번 방 모니터에 나와 희수 이름이 올라갔다. 의사는 진료실에 보이지 않는다. 간호사는 환자들을 한 명씩 불러 체온을 재고 있다. 대기실 빈 의자 찾기가 어렵다. 한자리 남은 곳에 희수를 앉게 하고 나는 희수 옆, 벽에 기대어 있었다. 20분쯤 기다려도 진료가 시작되지 않는다. 다른 진료실 간호사는 환자 이름을 호명한다.

"우리 공주랑 병원 데이트를 하네."
"근데 엄마 많이 기다려야 돼? 나 학교에 진학공 회의 가야 돼."
"진학공?"
"학생부 세특에 넣기 위해 만든 모임 있어. 사범대 갈 애들끼리 다문화교육 모의수업 준비해야 돼."

간호사에게 진료 언제 시작하는지 물었다. 10분 안에 시작한다는 얘기 듣고 희수에게 알려주었다. 희수가 폰으로 친구들과 약속시간 얘기를 하는 동안 나도 폰을 꺼내 초고 파일을 열었다. 맨 첫 장에 희수를 낳았을 때 글을 읽어본다. 내가 스물일곱 일 때 우리 희수를 낳았다. 희수는 지금 열일곱이다. 초보 엄마가 희수를 키우면서 보내온 세월만큼 우리 희수도 많이 자랐다. 초고를 읽다 말고 병원 오는 길에 찍은 사진 열었다. 은행잎 배경으로 셀카 찍은 사진을 친한 작가님에게 보냈다.

"눈이 작가님보다 더 이쁩니다. 입술도 매력적으로 생겼습니다."

답장을 희수에게 보여줬다. 친구랑 대화하다 말고 희수가 내게 말을 건넨다.
"나는 엄마 눈과 아빠 눈을 동시에 닮았어."
희수랑 나, 단 둘이 외출한 게 얼마 만인가.
대기시간 긴 종합병원에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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