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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May 29. 2019

햇빛과 바람으로 기르다

양배추도 생명입니다

 이른 봄에 모종으로 심는 작물 중에 양배추가 있다. 손톱만한 잎 두어 개가 달린 양배추 모종이 수박만한 양배추로 성장하는 과정은 볼수록 경이롭다. 그만큼 잘 돌보며 키워야 하는 작물이기도 하다. 


 손톱만한 잎 두어 장이던 양배추 모종은 잎을 더 만들고 키워 두 달쯤 지나면 꽤 큰 몸집이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태양 빛을 바로 받아 짙푸른 색을 띠므로 수확하기엔 이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커지고 많아진 양배추 잎들이 서로를 보듬어 싸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 새로 나오는 잎들의 뽀얀 색과 부드러움을 유지하게 된다. 흙의 양분을 최대한 빨아올려 잎들을 새로 만들어내지만 이미 서로 보듬어 안은 바깥의 푸른 잎에 갇혀, 속잎들은 서로서로 몸을 기대며 빡빡하게 들어찬다. 새로 생겨난 잎은 또 다른 새잎이 생겨날 때마다 밀리고 늘어져 바깥으로 갈수록 잎은 얇고 평평하며 속잎은 두텁고 잎맥을 유지한 모양으로 한 덩어리의 양배추가 된다.둥글게 모양이 잡힌 다음에도 한 동안 더 자라, 하지 감자를 캘 때쯤 되면 꽤 풍성해진 밭에서도 양배추는 존재감이 돋보일만큼 커진다. 


 양배추처럼 속을 꽉 채워 수확하는 또 다른 작물로는 가을배추가 있다. 가을배추와 양배추의 생육 기간은 3개월 내외로 비슷하고, 봄과 가을의 기온이 비슷한 우리나라의 계절 특성으로 양배추는 가을에도 재배가 가능하다. 


 배추나 양배추 모두 밑동을 칼로 잘라 수확한다. 배추는 잎과 뿌리가 바로 연결되어 있지만, 양배추는 굵고 실한 줄기로 잎과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배추는 뿌리와 잎을 분리함으로써 수확한다면, 양배추는 뿌리와 잎 사이의 굵은 줄기를 자름으로써 수확하는 방식이다. 


 손톱만한 잎 두어 장이었던 양배추 모종이 수박만한 크기로 자라는 동안, 뿌리가 빨아들인 흙 속의 양분을 잎으로 전달하는 줄기도 굵어져 마치 뿌리와 잎을 이어주는 동아줄 같이 굵어진다. 그 동아줄 같은 밑동의 줄기를 칼로 잘라 분리함으로써 양배추의 생장은 끝이 나고, 서툰 농부는 한 덩이의 양배추를 먹을 수 있게 된다. 


 양배추를 수확할 때 그 생명줄을 칼로 자를 때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 사이에서 약간의 혼란을 느낀다. 손톱만한 잎 두어 장이던 모종을 심어놓은 다음부터 잎에 벌레가 들지는 않았는지, 물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쇠한 겉잎을 그대로 두어서 뽀얀 속잎에 가야 할 양분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바라보고 물을 주고 바깥 잎을 정리해가며 정성으로 키운 양배추이기 때문이다. 


 알이 부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닭을 길러 결국 닭볶음탕을 해 먹는 과정을 모두 보여준 어느 티비 프로그램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 논란이 핵심은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정성으로 키운 닭을 어떻게 ‘(죽여서) 먹을 수가 있는가’였다. 그 논란을 다룬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알려진 한 동물관련자에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직접 기른 닭을 식용으로 쓰는 것)’고 물었더니 ‘굳이 그런 방식으로 식생활을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이기를 자신과 가족은 모두 ‘비건’이라고 했다. 


 우리는 동물을 식재료로 삼든 식물을 식재료로 삼든 무엇이든 먹어야 생을 이을 수 있으며,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는 음식을 섭취하여 목숨을 이어나가야 하는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무엇을 음식 재료에 포함할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따르되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두 그대로 충분한 생명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이 필요한 만큼만 먹을 것이며, 무엇을 먹든 우리는 그 ‘생명’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5월, 양배추가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올봄 우리 밭에는 열여덟 포기의 양배추가 자라고 있다. 5월 말, 양배추의 잎들이 둥글게 말리며 속이 차기 시작할 때다. 애벌레가 생장점 가운데 자리를 잡아 파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풀이 자라 양배추의 생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물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밭에 갈 때마다 살펴보며 정성껏 키우고 있다. 


 한달 뒤쯤부터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양배추 된장쌈을 먹을 수 있다. 닭볶음탕을 할 때 양배추를 썰어 넣어 같이 먹는 것도 물론 좋다.    


 비가 안 온지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생각에 오후 늦게 밭에 나갔다. 평소와 다르게 양배추의 잎들이 모두 땅을 향해 축 쳐져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호스를 연결하고 양배추에 제일 먼저 물을 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양배추 잎에 힘이 생기고 쳐졌던 잎이 다시 하늘을 향해 뻗는다.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일 듯이 잠깐 사이에, 양배추는 물관을 모두 열어 내가 준 물을 힘껏 빨아올려 제 몸을 추스른 것이다. 


그렇다. 양배추도 충분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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