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와 미나리
채소를 자급자족하겠다는 큰 포부로 텃밭을 경작한 지 10년째이지만, 모든 채소를 다 자급자족하는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봄 밭에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때부터 지금까지, 시도도 시행착오도 실패도 많이 했고 여러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한 작물도 많다.
그중 하나가 미나리이다. 미나리는 이른바 미나리꽝이라는 물속에서 자란다는 것만 알기 때문에 텃밭에서는 기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밭에서 자라는 밭미나리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이 또한 모종은 구경하지 못했고 씨조차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탓이 더 크다. 하지만 물 미나리든 밭미나리든 미나리라는 채소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짤막하게 자라고 더러 붉은빛을 띠기도 하는 밭미나리 겉절이에 비벼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미나리’에서 외할머니로 나오는 윤여정 배우는 영화 속에서 ‘미나리는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라고 하면서 작은 냇가에서 미나리를 키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런 냇물과 과 같은 환경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눈도 잘 내리지 않으면서 춥기만 하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며 이번엔 적극적으로 미나리 키우기에 대해 찾아봤다. 그러다가 습기가 많은 토양에 미나리 마디를 잘라 심으면 잎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주 오래전 베란다 텃밭을 해 보겠다고 사 둔 큰 사각형 화분이 떠올랐다. 당장 배양토를 사고 슈퍼에서 뿌리가 조금 있는 미나리 한 단을 샀다. 미나리 뿌리가 있는 아랫부분의 마디를 꺾어 배양토에 심고 수분은 저면관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스프레이로 윗동의 수분을 보충해 주었더니 일주일쯤 지났을 때 잎이 나기 시작했다. 그즈음 밭에 나갔다가 옆 밭을 경작하는 이에게서 운 좋게도 밭미나리 일곱 포기를 얻게 되었다. 옆 밭 비닐하우스 안에서 겨울을 나고 새로 잎이 나는 미나리였다.
‘뭐지? 이 우연은’,
그래서 올해는 물 미나리와 밭미나리를 모두 기르는 첫해가 되었다. 저면관수로 키우는 베란다의 물 미나리는 계속 수분을 보충해야 하지만, 밭미나리는 이름 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어도 잘 자란다.
채소를 자급자족하겠다는 큰 포부로 텃밭을 경작한 지는 10년째이지만, 태어난 곳에서 반백 년을 살다가 이 지방에 이주해 온 지는 11년째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낯선 땅에서도 딸의 가족들이 잘 정착하기를 바라는 어머니가 ‘미나리는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고 하던 말을 나도 주문(呪文)처럼 되뇌어 본다.
미나리를 키운 지 두 달이 다 되었다. 4월 중순이 지나자 기온은 점점 올랐고 밭미나리는 눈에 띄게 자랐다. 지난 주말, 밭미나리를 처음으로 수확했다. 밭미나리 특유의 향이 살아 있었다. 베란다의 물 미나리도 그저께 처음 수확해 반찬으로 먹었다.
올해, 텃밭에서 베란다에서 미나리가 뿌리 내렸다.
나도 새로 정착한 이 도시에서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