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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l 19. 2019

햇빛과 바람으로 기르다

콩잎김치를 아시나요

 콩잎김치를 먹는다. 이 지방에 옮겨와 산 다음, 콩잎김치는 내가 자란 지방에서만 그것도 아주 시골에서만 먹는 음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방 재래시장의 많은 먹을거리 중에서도 콩잎을 파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콩잎김치는 국물이 자박한 물김치의 일종이다. 약간 거친 듯하지만 시원하게 잘 익은 콩잎김치 한 잎을 보리를 많이 섞어 지은 밥에 얹어 먹는 그 맛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여름의 맛이다.


연두와 초록이 섞인 콩밭


 콩잎김치의 풀물은 다른 물김치보다 좀 되직하게 끓여야 한다. 풀물을 끓여 식혀 놓고, 따 온 콩잎은 한 장씩 떼어 잘 씻은 다음 포개어서 김치 통에 담는다. 어떤 김치에나 반드시 들어가는 마늘과 생강을 적당히 넣고, 여름 밭에 한창인 청량고추를 몇 개 썰어 넣어 칼칼함을 더한다. 콩잎김치의 가장 큰 특성은 간을 집된장으로 한다는 것이다. 식혀 놓은 풀물에 된장을 풀어 체에 밭친 다음 콩잎김치의 국물로 부어 준다. 된장을 간이 되도록 넣으면 좀 텁텁할 수 있으니 된장과 소금을 반씩 넣어 간을 맞춘다. 물론, 이 레시피는 우리 할머니의 것이었고 지금은 우리 집만의 것일지도 모른다.


콩잎김치가 시원하게 익었습니다.

 

 첫해에 우리가 시작한 텃밭의 넓이는 고작 열 평이었다. 고작 열 평의 밭을 두고도 막막했다. 밭은 생겼으나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우리에게 텃밭을 분양한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딱 하나, 공동 구매한 퇴비 두 포대를 밭에 골고루 뿌려 흙과 섞으라는 것이었다( 그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아마 퇴비도 뿌리지 않은 팍팍한 밭에서 경작을 시도했을 것이다).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작물은 딱 하나 상추였다. 상추 모종을 사러 나간 시장에서 상추의 짝인 쑥갓과, 바늘처럼 가는 대파 모종 몇 개를 사다 심어놓고는 인터넷을 파고 팠다. 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시장에 나가서 무슨 모종이 나왔나를 살폈다. 4월 중순쯤 고추 모종이 나왔길래 30여 주를 야심만만하게 사다 심었다. 그런데 4월 말에 눈이 펑펑 내렸다. 4월 말에 내리는 눈이라니...... 옮겨 와 살게 된 이 지방의 날씨에 대한 공부를 먼저 해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고추 모종이 눈에 덮여 하얗게 질려있는 모습은 슬펐다. 4월 말에 고추 모종은 절반 이상이 얼어 죽었다. 언 고추 모종을 뽑고 새 모종을 사다 다시 심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이제는 옮겨 와 살게 된 이 지방의 날씨에 대해 알게 된 것만큼이나 무슨 작물을 언제 심을지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예를들면 봄 작물의 씨 뿌림은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상추를 모종으로 심으려면 4월 중순은 돼야 하고, 고추 모종은 5월 초에, 고추 모종 심는 날에 참외와 수박, 오이 모종도 같이 심는다. 시금치는 5월이 지나면 싹을 틔우지 않지만 열무는 심을 때마다 싹을 틔우는 효자 작물이다. 7월이 지나 8월에 접어들면 밭을 정리하고 가을 무와 배추 심을 자리를 마련하고, 8월 20일경 무의 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을 심어 가을을 준비한다. 8월에 심은 배추는 늦어도 11월 말에는 뽑아서 김장을 하거나 잘 저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와 배추를 얼리게 된다. 


 첫해의 우리 텃밭은 백 평의 밭을 열 가구가 나란히 분양받은 것 중 하나였다. 그 열 가구 중에서 지금까지 텃밭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 뿐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계속 할 지는 모르겠지만). 첫해, 바로 옆 밭은 우리 밭보다 작물도 다양하고 훨씬 잘 자라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부럽기만 했다. 그해 가을 밭에서 만난 옆 밭 주인은 힘들고 귀찮아서 더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작별을 알렸다. 


 또 다른 옆 밭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브로콜리, 수박 같은 작물이 자라고 있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밭의 주인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날 무렵까지 만날 수가 없었는데, 그 사이 호박 덩굴이 자라 온 밭을 덮어버렸다. 늦여름과 가을로 접어들 때까지 맹렬히 자란 호박 덩굴은 온 밭을 덮더니 우리 밭으로도 넘어왔다. 하는 수 없이 우리 밭으로 넘어오는 덩굴은 소심하게 자를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옆집의 호박 덩굴을 보자 속으로는 호박잎 쌈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밭을 조금 넓힌 다음 해에는 우리 밭작물에 호박이 추가되었다.


 2년째 되던 봄에는 주인의 얼굴도 모르는 옆 밭에서 빨간 딸기가 단내를 풍기며 먹음직스럽게 달리더니 끝내 그대로 물러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아야 했다. 딸기를 심은 밭의 주인은 가을까지 끝끝내 밭을 찾지 않아 그 밭은 딸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풀밭이 되어갔다. 3년 차 우리 밭작물에 딸기가 추가되었다. 


 텃밭을 가꾸며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다음 해부터는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텃밭에서 풀과 씨름하고 제때 심고 거두는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풀과 씨름하며 땀을 흘리고 제때 심고 거두는 일만이 텃밭 일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 잎이 나란히 달리는 콩잎


 그러니까 콩잎으로 김치를 담거나 쪄서 밥을 싸 먹으며 콩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자라나는 호박 덩굴에 놀랄 것이 아니라 여린 호박잎이 새로 생겨날 때마다 따서 가시 껍질을 벗기고 살짝 쪄서 밥을 싸 먹으며 호박이 굵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딸기는 첫해에는 겨우 몇 개밖에 안 열리겠지만 그다음 해에는 두 배 세 배로 포기 수가 늘어나 몇 년 안에는 온 가족이 먹기에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열린다는 것을 체험할 때까지 키우며 기다려야 한다. 옥수수는 한 구멍에 두 알씩 심었다가 두 개의 싹이 모두 나면 하나의 싹을 모질게 뽑아버려야 튼실한 옥수수를 먹을 수 있고, 옥수수 끝에 달리는 수염도 버리지 말고 잘 말렸다가 한겨울 뜨끈한 차로 끓여 먹으면 텃밭의 고마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고추의 본 가지가 잘 자라도록 곁순이 날 때마다 떼어내어 주어야 실한 고추가 열리고, 떼어낸 고추의 곁순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짝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으면 비타민 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만들어 먹어야 한다. 그렇다. 텃밭을 잘 가꾸려면, 보람을 느끼며 오래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잘 먹을 줄을 알아야 한다. 


차로 우려 먹는 옥수수 수염

 

 지난 주말에 담근 콩잎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이 콩잎김치를 다 먹을 때쯤 다시 보드라운 콩잎을 따 올 것이다. 가지는 보통 쪄서 나물이나 냉채로만 먹지만 전분을 묻혀 튀겨서 가지 탕수를 만들어 먹으면 별미이다. 처음 달리는 고추는 매우 커서 반을 갈라 살짝 절인 다음 무채 소를 넣어 김치를 만들어 먹기에도 좋다. 밭 가에 저 혼자 자라는 머위 잎도 가져와 쪄 먹으면 쌉싸름한 텃밭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평지가 없는 높은 산 중턱의 가파름에도 작디작은 밭을 가꾸며 먹을 것을 마련하시던 할머니를 따라 다니던 어린 날이 결코 결핍이 아니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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