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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n 12. 2019

햇빛과 바람으로 기르다

노란 참외는 기쁨입니다

 참외는 5월 초 고추 모종 심을 때쯤 모종으로 심는다. 참외는 수박과 함께 밭 속의 조그만 밭을 이룬다. 참외와 수박은 덩굴식물이라서 내버려 두면 덩굴이 마음대로 자라 밭을 덮어 다른 작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참외와 수박을 심은 다음 울타리를 둘러쳐 그들에게 허락할 만큼의 땅을 미리 정해 준다. 그렇게 밭 속의 밭에서 참외와 수박은 서로 엉켜 자라다가 비좁다 싶으면 순이 울타리 구멍 사이를 비집고 탈출하기도 한다.


참외와 수박 덩굴이 가득 찬 밭 속의 밭

 

 참외가 익을 때쯤이면 밭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참외가 덩굴 속에 묻혀 있어서 더러는 익다 못해 물러진 참외를 발견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상품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후숙을 생각해서 조금 덜 익은 것을 따야겠지만, 그냥 가져다 먹으면 되는 우리로서는 노랗게 잘 익을 때까지 두었다가 수확한다. 싯푸른 넝쿨이 가득한 밭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잘 익은 참외는 딱 한 번 본 꾀꼬리처럼 샛노랗다. 


노란 참외와 수박

 

 색에서 느끼는 감정이란 개인의 경험이나 취향 등 복합적인 관계성 속에 놓여있는 것이라 딱 하나로 합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게 노란색은 특히 참외의 노란빛은 ‘기쁨’이라는 감정에 닿아 있다. 


 나는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의 첫 집은 해발 천 미터나 되는 높은 산의 중턱에 있었다. 산 중턱의 집이어서 수도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시멘트로 네모나게 물을 가둘 수 있는 물받이 통을 만들어 놓고,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대나무나 파이프 관 같은 것을 연결해서 모았다가 사용했다. 


 그 집에서는 겨우 다섯 살 까지만 살았다. 그래서 그 집에 대한 기억은 좀 희미하고 더러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유독 또렷이 기억나는 몇 장면이 있는데, 그 중 ‘기쁨’이라는 감정과 맞닿은 하나의 장면은 노란 참외에 관한 것이다.   

  

 노란 참외가 시멘트로 만든 물받이 통에 풍덩 떨어진다. 떨어진 참외는 물속에 잠겼다가 물의 출렁임과 함께 다시 솟아오른다. 던져지는 참외에게도 물속에서 다시 솟아오른 참외에게도 햇빛이 환하게 쏟아져, 참외가 가진 노란 빛은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그날은 네 살 무렵의 어느 늦은 봄이었고, 그것은 내게 남아있는 첫 기억이다.     


'기쁨'의 색 참외

 

 그 집에서도, 산에서 내려와 살았던 그다음 집에서도, 언제나 나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우리 가족은 산골에 살았지만 아버지는 도회지에 직장이 있었다. 비포장 도로 위로 하루에 몇 번만 버스가 닿곤 하는 산골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가끔씩 집에 다녀가시곤 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그 노란 참외는 물속에 담겨 시원해지라고 물받이 통에 던져졌던 것이었고, 노란 참외의 빛깔에 ‘기쁨’이 담긴 까닭은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가져오신 참외였기 때문이다.


 올해는 참외 여섯 그루와 수박 세 그루를 심었다. 지난 주말에 보았더니 꽃은 많이 피었지만 아직 참외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번 주말에 가면 콩알만한 혹은 자두만한 참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좀 더 지나면, 나는 또 ‘기쁨’의 감정과 맞닿아 있는 노란색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내가 기다리던 아버지는 이제 나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되셨지만, 노란 참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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