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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l 05. 2019

햇빛과 바람으로 기르다

나비가 찾아오는 밭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나오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것은 서양의 신화와 우리의 설화 모티프가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드라마에서 특히 신기했던 것은 가끔씩 도깨비 앞에 신이 나타나는(現神) 장면이었다. 신은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믿는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신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드라마 속에서 신을 작은 날개를 팔락이는 나비로 표현한 것이 몹시 흥미로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드라마에 빠져 있었던 탓인지 그 후로 밭에서 나비를 볼 때면 예사롭지 않게 여겨졌다. 게다가 한 마리 흰 나비가 떠나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며 한참이나 나는 것을 볼 때면 없는 무슨 의미라도 지어내고 싶어졌다. 그러다 또 생각난 것이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형상을 만들자 한 마리의 나비가 그 콧구멍 속으로 날아 들어가 인간에게 영혼이 깃들게 되었다는 <프쉬케> 이야기였다. 봄엔 나비와 인간의 영혼과의 관계를 연관 짓는 상념에 자주 빠지곤 한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4월 초였다. 화장장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첫 새벽의 어둑함이 무색할 만큼 벚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이 나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화장장에서의 절차들.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화장로의 철문이 닫히고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벚꽃만 끊임없이 흩날렸다.    

그러고도 봄날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고, 밭에는 흰나비 노랑나비가 날고 꽃을 찾는 벌들이 잉잉거렸다. 아무 생각 없이 밭일에 골똘하다가도 날갯짓을 하는 나비를 볼 때면 문득 아득해지곤 했다.   

  

보이는 것은 본 것이다. 그날로부터 두 해가 지난 올해도 나비는 내 밭으로 날아든다. 다행히도 두 해라는 시간은 나비를 보는 내 아득함의 정도를 조금 덜하게 해 주었다. 나비가 우리 밭 안으로 들어와 날면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오래 맴돌 때면 한참을 바라보게 되지만, 이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는 되었다.   

  

어느 계절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초여름으로 이어지는 요즈음의 텃밭에는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이즈음은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때이기도 하다.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고추, 콩, 옥수수는 열심히 꽃을 피워내고 나비와 벌들은 그 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 열매를 먹는 작물은 아니지만 결국 피어 버린 쑥갓의 노란꽃, 하얀 감자꽃, 흰색과 보라색이 눈부신 도라지꽃, 동그란 파꽃, 펼쳐진 우산 같은 하얀 방풍나물 꽃, 또 하얀 부추꽃, 연보라색 열무 꽃, 또 연보라색 검은콩꽃......    


감자꽃


이 다양한 꽃들을 찾아오는 나비의 모양도 다양하다. 가장 많이 보는 배추흰나비, 작은 노랑나비, 가끔은 제법 큰 호랑나비나 검은 제비나비를 볼 때도 있다. 어떤 나비는 손톱보다 작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아야 보인다. 나비는 자신이 찾던 작물을 찾으면 날개를 세로로 접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가끔은 바르르 날개를 떨기도 한다. 나비가 작물에 앉은 것을 보면 왠지 나도 숨을 잠시 멈추게 된다. 그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파꽃
가지꽃


방풍나물꽃

.         

토마토꽃

(방해하지 않으려 가만 있었던 바람에 나비는 사진이 없다......)


물론, 주로 잎을 먹는 작물들은 꽃이 핀 다음에는 맛이 없고 질겨진다. 그래도 꽃은 꽃이어서 예쁘고, 열매를 맺는 작물에 찾아오는 나비나 잎을 먹는 작물에 내려앉는 나비나 모두 내 밭을 찾아온 생명이어서 반갑다.


7월 초, 넓지 않은 밭엔 내가 기르는 생명과 그것을 찾아온 생명들로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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