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둘째 이모네 집에 가는 걸 좋아했다.
사촌 형은 반려동물을 유난히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 집엔 까만 새끼 고양이가 있었고,
나는 그 아이에게 ‘새집’을 만들어주겠다며 장식장 안에 넣었다.
잠시 후, 고양이는 구슬프게 울었다.
형은 나를 꾸짖었고, 나는 울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날의 울음소리가 오랫동안 귀에 남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좋은 마음이 언제나 ‘사랑’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던 해,
엄마는 사촌 형에게서 토이푸들을 한 마리 분양받아 왔다.
이름은 뽀뽀였다.
형은 원래 뽀뽀 엄마와 함께 키우려 했지만,
엄마와 이모 사이의 작은 ‘은막의 거래’ 끝에
그 아이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됐다.
뽀뽀는 더운 날이든 추운 날이든
꼭 내 이불 속에 들어와 내 팔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그 작고 따뜻한 숨결,
가끔은 내 심장 박동과 박자를 맞추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공보의로 내려가던 시절,
나는 뽀뽀를 관사로 종종 데려갔다.
긴 운전 끝에 도착하면,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그 아이가
내 손을 핥으며 반기곤 했다.
뽀뽀는 나에게 하루의 피로보다
더 강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내과 수련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던 날,
나는 뽀뽀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뽀뽀야, 오빠 미국 갔다가 올게. 건강하게 잘 지내.”
그날 뽀뽀는 유난히 조용했다.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내 얼굴을 바라보던 눈빛,
그 풀이 죽은 표정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도미 후, 바쁜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도
가끔 뽀뽀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그리운 내 목소리를 더 잘 들으려는 듯
고개를 꺄우뚱대던 그 귀여운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화면 너머에서 나를 찾듯 고개를 기울이던 그 표정이
이상하게도 내 가슴을 조용히 쥐어짰다.
그리움이란 건,
소리로도, 빛으로도 전해지는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뽀뽀가 숨이 차서 병원에 갔다는 소식이었다.
작은 기도의 협착이 오래 진행되어
심부전이 왔다고 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는 수련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을 듣고,
생명을 붙잡는 일을 하면서도
내 가장 소중한 생명은 멀리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당직실에서 스크럽 상의가 젖도록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뽀뽀야… 오빠가 너무 사랑해.
휴가 때 다시 보자던 말, 지키지 못해 미안해.
곧 다시 보자.”
그날 이후, 나는 생명 앞에서 함부로 강해지지 못했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비숑 푸들을
막내 이모네에서 분양받아 오셨다.
하얗고 곱슬거리는 털, 조금 짝짝이 눈.
나는 처음부터 이 아이를 좋아할 수 없었다.
이 아이를 좋아하는 건
뽀뽀에게 배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거침이 없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할미의 DNA 냄새를 맡았는지,
처음부터 나에게 과도한 친한 척을 했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무릎 위로 올라오고,
내가 일어나면 질투하듯 따라왔다.
그 눈빛 속엔 묘하게 익숙한 온기가 있었다.
뽀뽀가 처음 내 품에 고개를 기댔던
그날의 온도와 닮아 있었다.
결국 나는 이 아이의 사랑에 항복했다.
아직도 뽀뽀의 모습이
이 아이의 얼굴과 겹쳐질 때가 많지만,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단지, 모습과 이름을 바꾸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