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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02. 2021

라마단이라 남아도는 샌드위치

그렇게 한국어 학급의 1학기는 끝이 났다

도미노 같은 아이들을 그나마 벌떡 일으켜 세우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문화 수업이었다. 다문화 전문 강사님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이 수업에는 한국어 학급 학생뿐 아니라, 징검다리 수업(주: 한국어 의사소통이 원활한 다문화 학생 중, 원적학급 수업 보충이 필요한 경우 개설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함께 참여했다. 1학기에는 ‘문화’라는 말 대신 ‘집단 상담’이란 이름으로 진행되었지만, 기본적인 진행은 문화 수업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날의 수업은 ‘샌드위치 바꿔먹기’였다. 1교시에는 샌드위치 바꿔먹기라는 책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2교시에는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 시간이었다. 하필 라마단 기간에 위치한 수업이었지만, 이미 예산에 맞추어 모든 재료를 준비한 터라 일정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최대한 아이들의 문화에 맞춰 음식 재료를 준비한다고 하신 강사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시작됐다. 책에는 아이들 나라에서 주로 먹는다는 후무스 샌드위치가 등장했다. 아이들은 어쩐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문화 선생님은 다양한 샌드위치 재료를 준비하셨다고 했지만,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게, 몇 개 없어 보인다. 특히, 저 앙증맞은 딸기잼은 심히 불안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모슬렘 아이들을 배려해, 비싼 샌드위치용 닭가슴살 슬라이스 햄도 준비하셨는데, 아이들의 손은 온통 저 앙증맞은 딸기잼으로만 향한다. 감자 샐러드도 오이도 치즈도 엄청 많은데, 아이들의 손은 딸기잼이다. 불과 몇 분 만에 딸기잼이 동이 났다.


   결국, 그날 난, 두 번이나 근처 빵집에서 딸기잼을 사 와야 했다. 아이들은 이미 샌드위치를 바꿔 먹은 모양이었다. 셀마인 우리 아이들은 이미 릴리의 샌드위치를 이해하고, 마음껏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린 아이들의 그 폭넓은 이해를, 이해하지 못했고.

(좌) 후무스 샌드위치, (우) 딸기잼 샌드위치

   두 번의 수고로움으로 그럭저럭 문화 수업은 순조롭게 끝이 나는 듯했다. 라마단 금식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금식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미리 수업에 오지 않도록 하거나, 여러 가지 배려의 방법을 궁리해 둔 터였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본인 몫의 샌드위치를 다 먹은 유스프가 잔뜩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금식을 해서 오늘 수업에 오지 못한 누나들과 집에 있는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단다.


   때는 6월, 식중독균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시기 아니던가. 아이가 샌드위치를 가져가면, 아마 해가 저문 밤늦게나 온 가족이 나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전에 만든 샌드위치를 들고, 원적학급으로, 이슬람 학교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집에 가는 건 덤이고.


  당연히 나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샌드위치 가져가면 안 된다고 배 아프다고, 버려야 한다고 아무리 손짓, 발짓, 몸짓으로 설명을 해도 아이에게 가 닿지 못했다. 아이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라마단이라 샌드위치만 남아도는 줄 알았는데, 아이의 원망도 남았다. 나의 전하지 못한 진심도 남았다.


   라마단에 대한 나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했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는 더없이 부족했다. 대신, 샌드위치와 원망, 전하지 못한 진심만 남아돌았다. 결국, 유스프는 샌드위치를 가져가지 못했다. 아이가 가져가지 못한 건, 그저 샌드위치였을까. 어쩐지 쓰레기통에 버려진 샌드위치처럼, 우리의 수업도 처박힌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라마단과 함께, 한국어 학급 1학기 수업도 끝이 났다.   


셀마인 우리 아이들이 좋아했던 릴리의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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