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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07. 2021

여기서 한 몸이면 좀 곤란해

다름이 너희를 지켜줄 수도 있단다

살갗과 살갗이 맞대어 있었다. 가을이라지만, 아직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반팔 체육복 아래로, 맨살이 번들거린다. 그 맨살과 맨살이 부대끼고 있었다. 순간, 여기가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인 양 아찔한 기분이 든다.


   눈을 비비고 다시 정신을 차린다. 여기는 와이키키도, 아이들의 나라인 우즈베키스탄도, 카자흐스탄도 아닌 대한민국의 한 중학교 교실이다. 아이들은 여기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학생들이고.


   디미르와 비카는 사귄 지, 이제 막 일주일이 넘은 연인 사이라 했다. 아이들 나라에선 남사친과 여사친끼리 볼을 비비는 게 가벼운 인사라고 말한다. 남사친, 여사친끼리의 스킨십이 그 정도인데, 하물며 ‘사’ 자가 빠진, 남친과 여친 사이의 스킨십은 오죽하랴.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한 몸을 이루며 교실 안을 서성댔다.


   “얘들아, 안 돼. 떨어져!”라는 나의 말은 아이들 귀에 가 닿지 못한 채, 자꾸 바닥에 떨어졌다. 결국,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안된다고 크게 팔로 엑스자를 그려댔다. 그제야 나와 눈이 마주친, 디미르가 묻는다.


왜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설명해야 하는 때는 언제든 많았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늘 겪는 순간이지만, 디미르의 질문은 딱 떨어진 설명이 나올 수 없는 물음이었다. 그저 여기는 학교라서 안 된다는 말만 겨우 내뱉을 뿐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아이들의 문화가 스킨십에 개방적인 문화인 것도 잘 몰랐다. 저 일이 있고 난 후, 근처 학교 다문화 언어 강사님께 여쭈어보고 겨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결혼을 제법 빨리한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다. 중학생인 아이들의 부모님 중, 30대 중반의 젊은 분들이 꽤 많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아이들은 한국의 중학교에 속한 학생들이었다. 선생님이 있는 교실 안에서도 한 몸을 이루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는 어떠한 스킨십의 세계를 펼칠지, 게다가 개방적인 그 아이들의 문화와 함께 어떤 다양한 일들이 생길지, 그때만큼은 진지한 유교걸이 되어, 아이들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한국어 학급에서의 첫해는, ‘다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꽤 고민했었다. 게다가 그때는 다문화 언어 강사님도 계시지 않았다. 결국, 보건 선생님과 다문화 부장님, 각반 담임 선생님들께, 의견을 구하고, 보건 선생님을 모시고 아이들에게 성교육(性敎育)을 했다.


   그 이후, 중학교 한국어 학급에서는 매년, 보건 선생님을 모시고 성교육(性敎育)을 한다. 다문화 언어 강사님이 계시게 된 이후로는, 선생님이 보건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역해 주신다.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여,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어 주곤 한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에게 다름을 전하고 싶었다.


   결국, 디미르와 비카는 한 달이 채 못 되어 헤어졌다. 성교육 이후, 헤어진 터라 괜히 유교걸이 되어, 아이들을 갈라놓은 건가 싶었다. 조금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잘 지내는 거 같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매년, 한국어 학급에는 커플들이 생겨난다. 그때처럼 교실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지만, 가끔 퇴근길에 한 몸 비스름한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올해도 꼭 보건 선생님을 통해 성교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그거밖에 되지 않아 미안하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던지는 안 된다는 말과 팔로 그리는 큰 엑스자, 보건 선생님과 다과를 나누며, 시행하는 성교육(性敎育). 그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 내가 건네고 싶은 이야기라는 걸 아이들이 알아주는 날이 올까. 사실 한국어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는 걸 말이다.


때론, 다름이 너희를 지켜줄 수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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