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3. 2021

길을 헤매는 미아

미아는 첫날부터 길을 헤맸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개학을 하고, 2개월 만에 등교했을 때였다. 한국어 진단평가를 치른 첫날이기도 했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때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미아가 실종됐단다.


   아무리 한국어가 서툴러도, 중학생이 된 아이인데, 진짜 길을 잃은 걸까 싶었다. 혹시라도 무슨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미아는 교통카드도 없고, 핸드폰도 꺼진 채로, 길을 잃었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았지만, 미아가 사라졌다는 곳으로 바로 달려 나갈 수 없었다. 나간다 해도 미아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다. 난 그날 미아를 처음 봤고, 미아의 머리칼과 흰 피부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미아는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그 일을 계기로 미아가 초등학교 때 겪었던 혼란과 아픔에 대해 들었지만, 미아에게서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기에 우린 안심했다. 미아는 내가 맡은 반이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학년이 바뀌면서 미아를 맡게 됐다. 미아는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존재감도 희미했다. 미아는 꼭 뿌연 담배 연기 같았다. 처음엔 매캐한 냄새와 함께 뿌옇게 시야를 흐렸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아이였다.


   담배 연기 같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어느 날, 미아가 선도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화장실에서 흡연을 했단다. 담배 연기 같은 미아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어쩐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다신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미아의 약속이 담긴 반성문으로 일은 마무리됐다.  


   어느 날부터, 미아의 팔목에 흰 붕대에 눈길이 갔다. 30도를 웃도는 더위에도 미아는 긴 팔 점퍼를 입고, 붕대가 감긴 팔을 가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미아의 상황을 학교에 알릴 수밖에 없었고, 미아가 계속해서 자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미아는 아직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고, 상담을 위해서는 통역 선생님도 필요한 상태였다. 미아는 그마저도 거부했다.


   그렇게 미아를 지켜보는 나날들이 길어졌다. 미아가 하루만 학교를 오지 않아도, 조금만 지각을 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미아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전화를 할 때, 뒤늦게 학교에 왔다는 전화를 담임 선생님과 주고받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서로의 한숨만이 우리의 걱정을 대신했다.  




   미아는 자꾸 길을 헤매는 것 같았다. 삶에서, 생에서 아이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는 중인 것 같았다. 처음엔 그런 아이에게 등대가 되어 주고 싶었다. 길 잃은 아이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건 나의 욕심임을 깨달았다.


   이젠 그저 아이 곁에서 함께 길을 헤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든지 길을 헤매도 좋으니, 그저 아이가 가느다랗게 이어진 그 인연의 끈을 놓지만 않기를. 언젠가 아이가 그 끈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금이라도 당긴다면, 그때는 아이 곁으로 바짝 다가갈 수 있기를.


   미아가 부디 사라지는 연기가 되기보단, 언제라도 화르르 피어날 불꽃을 품은 숯과 같은 삶을 살기를. 아니, 그저 살아주기를, 살아내 주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서 한 몸이면 좀 곤란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