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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5. 2021

우즈벡 아미에게는 ‘ㅜ’를 이렇게 말해요

빅토리아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미였다.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된 친구였는데 그 아이는 방탄소년단(이후 BTS로 통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의 가방부터 가방에 달린 인형까지 모두 BTS의 굿즈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지만, 한국 아이돌 가수의 팬을 만난 건, 빅토리아가 처음이었다. 보통 내가 만난 아이들은 한국 가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가수를 알고 쉬는 시간마다 열심히 동영상을 보며 춤을 추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가수를 좋아하기보다는 춤이 중요한 듯했다.


   우리의 우즈벡 아미는 틈만 나면, BTS와 정국을 외쳤다. 그때는 BTS에 대해 잘 모를 때라, 아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이가 하도 동영상을 틀어달라고 하기에, 혹시나 해서 이렇게 검색했다. ‘BTS 한국 전통문화’.


   그렇게 아이들에게 보여준 게 2018 MMA(Melon Music Awards)에서 BTS가 꾸민 IDOL 무대였다. 본인들의 곡으로 삼고무, 부채춤, 처용무, 북청 사자놀음, 농악놀이 등의 다채로운 전통춤과 음악을 곁들인 공연이었는데, 의외로 아이들에게 좋은 전통문화 수업이 되었다. 나도 ‘아미’가 된 건 덤이었다.


   그 이후, 빅토리아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만능 치트키는 BTS였다. 스티커를 모으면 주는 상품은 BT21 캐릭터(주: 라인 프렌즈와 BTS의 협업으로 탄생한 새로운 개념의 캐릭터 라인업)가 그려진 필통이었고, 소소하게 제공되는 건, BT21 메모지나 인덱스 스티커였다.


   빅토리아가 아미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발음 교육이었다. 빅토리아와 나는 마스크를 벗고 만난 적이 없다. 우린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만나, 여태까지 마스크를 쓴 채 만나는 중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입 모양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빅토리아는 다른 외국인들이 흔히 그렇듯, ‘오’와 ‘우’를 구분하지 못했다. 두 개의 발음을 매우 헷갈려했다. “‘오’는 입을 새끼손가락 하나만큼 벌리세요, 입술을 동그랗게 만드세요, 혀끝은 밑으로 내리고, 혀의 뒤쪽을 올리세요.”라고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우는 또 어떻고.


   빅토리아가 아미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오’와 ‘우’ 발음은 이렇게 가르치면 쉬웠다. “빅토리아, 보라해(주: BTS멤버인 뷔가 팬미팅에서 이야기한 것에서 유래했다. 아미들 사이에서는 ‘사랑해’의 의미로 쓰인다.)의 ‘오’, 정국의 국, ‘우’를 기억해!” 그러면, 빅토리아는 헷갈리는 단어도 정확하게 받아 적곤 했다. 마스크를 쓰고 만나는 우리에게, 보라해의 오와 정국의 우는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입 모양을 보여줄 수도, 발음 방법을 쉽게 설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빅토리아를 비롯하여 아이들과 좀 더 재미있는 수업을 해 보려고, BTS 기획사에서 만든 ‘Learn! Korean with BTS’를 주문했다. 오래 기다려서 교재를 받았는데, 막상 교재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용하게 사용하고 싶었던 문화 부분 지문이 영어라 더 그랬다. 러시아어는 음성지원도 되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코로나가 더 심해져, 수업 방식이나 시간표가 많이 바뀌게 됐다.


   다행히도 올해 한글날 KBS에서 한글날 특집 방송으로 ‘#방탄_ 때문에_한글_배웠다’를 방영한다고 한다. 이 영상이라도 구매해서 아이들과 함께 시청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이들이 한국어 수업을 즐겁게 여겨 주기를 바란다. 비록 BTS 교재를 활용하는 건 실패(?)했지만, 지금의 여건과 상황 속에서 최대한 재미있고 즐겁게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 수업의 이름이 라온(주: 고유어로 즐겁다는 뜻) 한국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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