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12. 2021

바코드 그리는 여자

바코드는 책임을 싣고


여행의 시간은 길지 않았기에 매일 바코드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정은 촘촘하게 그리고 생각의 리듬은 굵거나 가늘게 조절했습니다.
'유럽의 길목에는 시(時)가 있다. ' 中  - 최형철 -


우연히 읽은 이 책에서 매일매일, 바코드를 그리며 수업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내 수업도 바코드를 그리는 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어 강사다. 한국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어느 학교든지 강사가 한 학급만 수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원이 적어, 한 학급만 맡는다고 해도 아이들의 수준은 제각각이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부터, 한국어로 욕을 맛깔나게 하는 아이까지 한 반에 모두 모여 앉아있다. 이쪽에서는 ‘아야어여’를, 저쪽에서는 ‘높임법’을 가르치는 게 일상이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책의 바코드


   맡은 아이들이 적었을 때는 나름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적어도 수학 시험지를 앞에 두고, 한국어를 몰라서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일은 없기를. 수행 평가지에 아무 말 대잔치만 써내지 않기를 바라며 수업을 그려나갔다.


   나의 바람과 달리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점점 하향 평준화됐다. 대부분 표준한국어 의사소통 3급에서 4급을 배우는 아이들이 왔었는데, 어느새, 한글 자모부터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도 북적였다. 당장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는 일이 생존인 아이들이 늘어만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수업시간표와 등교 일정은 일주일이 멀다고 바뀌었다. 한국어 수업을, 어느 주간에는 20차시를, 어느 주간에는 4차시의 수업만 겨우 했다.  


   고무줄 같은 시간표에 오는 아이들도 계속 바뀌었다. 어떤 주에는 1학년만, 어떤 주간에는 2학년만, 어떤 주간에는 12명만, 어떤 주간에는 20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배움의 연속성 따위는 없었다. 처음에 가졌던 그 야심 찬 계획은 완벽히 실패했다.


   하루하루 늘어났다 줄어드는 고무줄 같은 시간과 아이들을 두고, 이런저런 학습지와 자료들로 그 길이를 일정하게 만들었다. 촘촘하지만, 저마다의 리듬에 따라 굵기가 달라지는 바코드처럼, 그러나 늘 그 끝은 일정한 바코드처럼 난 매시간의 수업을, 매일의 수업을 재단했다.


   나는 여전히 일정한 바코드를 그리는 여자다. 부디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면, 내가 그리는 이 수업들이 불량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그린 바코드들이 리더기를 들이대면 ‘띡’하고 읽히는 정확함을 가지길.


   오늘도 나는 그렇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오차범위가 최소인 바코드를 그린다.


내 수업이 이렇게 아름다운 바코드가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우즈벡 아미에게는 ‘ㅜ’를 이렇게 말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