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시어머니 댁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가서 그런지, 점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남편은 라디오 틀었다. 주진우 기자가 진행하는 ‘주진우 라이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선이 가까워서 그런지,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국민의 힘 대변인인 김병민 교수와 전화 연결이 됐다. 전날 찍힌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국민의 힘 대선 후보가 꽤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의 이뤄진 인터뷰였다. 야권 주자들의 단일화 이야기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고 말이다.
이들의 인터뷰는 한마디로 창과 방패의 명승부였다. 주진우 기자는 엄청 날카로운 질문을 연신 해댔고, 김병민 대변인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창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들의 인터뷰를 들으며, 특히 김 대변인의 화법을 지켜보며 나는 이상한 부분에 꽂혔다. 나의 평소 말하기를 반성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소 직선적이며, 돌려 말할 줄 모르고, 지나치게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나의 말하기 방식을 말이다.
김 대변인은 민감한 주 기자의 질문에 절대로 명확한 대답을 내어주는 일이 없었다. 조곤조곤 차분하면서도 조리 있게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언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핵심은 전혀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듣는 이가 기분이 1도 나쁘지 않았다. 그의 말투나 억양, 태도가 참 공손하면서도 차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당 대변인이라는 그의 특수한 위치에서의 말하기로 보자면, 특히 신뢰성 측면에서 보자면, 신뢰성은 매우 떨어지는 인터뷰이긴 했다. 물어보는 이와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그 무엇 하나 속 시원하고 정확하게 대답해 주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질문하는 이와 듣는 이가 기분 나쁘지 않게, 심지어 감탄이 나올 정도의 언변과 태도로 인터뷰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최근 나에게 이 말과 관련된 태도로 인한 오해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평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개선 사항을 이야기할 때, 나는 다소 흥분한 상태로, 상대방이 느끼기에 화난 사람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늘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으로 단단히 찍히고 말았다.
일의 내용은 이랬다. 나는 올해 원서접수조차 하지 않은 학교에, 누군가 서류에서 떨어졌다며, 작년에 아이들을 얼마나 열심히 가르쳤는데 나를 떨어트리냐는 항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당연히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정확히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 생활한복 입고 다니는 선생님 아니냐는 소리가 제일 먼저 나왔단다. 한마디로 나는 그 학교에서의 이미지가 ‘불만이 많고 항의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도 않은 일의 당사자로 지목당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들으니, 저절로 나의 말하기를 반성하게 되었다. 아니, 나의 말하기를 비롯한 생활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고, 늘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닌지, 나의 태도는 언제나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결국 가장 나를 숨길 수 있는 글에서조차 스멀스멀 나오고 있는 걸 말이다.
자칫 교묘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대변인의 모든 태도를 배우고, 본받고 싶지는 않다. 솔직함은 그대로 두되, 그 솔직함을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지혜롭게 이야기하는 어떤 방법을, 그 화법은 좀 배우고 싶다. 인터뷰 내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지만, 전혀 흥분하지 않고, 나긋나긋하고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 태도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신폭신하면서도 달콤하지만, 제맛을 모두 가진, 카스텔라 같은 말하기를 해야겠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카스텔라 달팽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