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돼지갈비와 맥주
2020년 10월 27일, 오후 8시 46분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했던 오늘. 어젯밤에 오랫동안 준비하던 일을 드디어 끝내고, 기분 좋은 마무리를 했다. 은연중에 압박감을 느꼈는지 꿈에서 시달리다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난 오전. 꿈속과는 다른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햇빛은 지나치게 밝았고 마음엔 괜한 설렘이 들어찼다.
나가야 하는 동생을 위해 한 잔, 나를 위해 한 잔. 늘 내 전용 컵에만 담던 얼음을 하나 더 준비하려니 생소했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연료, 카페인을 주입하고 함께 라면을 끓여먹었다. 국물에 고추장을 살짝 더 푼다는 동생의 비법 덕분인가, 평소보다 맛있었다. 국물에 말아먹은 밥도 맛있었다. 맛있고 따스한 출근 전 시간.
일하기 전에 주입한 온기 덕분인가, 짧고 굵게 지나간 정신없는 업무 시간이 쌀쌀하지 않았다. 바빴지만 그래도 여유롭게 웃을 수 있었다. 출근해서 아빠와 잠깐 나눈 통화도 내게 다른 온기가 되었다. 헐렁한 셔츠 사이에 스며든 온도가 차갑지 않아서 다행인 하루.
맥주를 한 아름 사들고 돌아온 집. 맥주의 안주이자 하루를 끝마친 기념으로 준비된 메뉴는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 노래 불렀던 돼지갈비였다. 달콤 짭짤한 소스를 잔뜩 머금어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사실 우리 가족은 가족끼리 모여서 밖에서 밥 먹는다 하면 갈비이거나 소고기여서, 이렇게 집에서 먹으니 오늘 하루가 조금 더 특별해진 기분이었다. 여기에 마트에서 예전에 한 번 마셔보곤 웩했던 맥주가 괜히 눈에 들어와 마셨는데, 웬걸, 정말 갈비랑 잘 어울렸다. 맥주에 약간 더해진 과일향이 새삼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기분 좋은 저녁.
남은 맥주를 비워내며 스쳐 지나가는 기억. 집 앞 호프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적에 사장님께 들었던 말, "맥주는 흘리면 끈적거리니까 꼭 바로 닦아내야 해." 이 말을 들은 후로 맥주가 흐른 자리는 더 벅벅, 그 흔적을 닦아냈다. 소독약을 이곳저곳 수시로 뿌리며 닦아내는 요즘도 가끔 생각나는 그때의 움직임. 약간 끈적이기도 하는 갈색빛 갈비의 양념을 흰 밥 위에 올리니 그 흔적이 바로 남는다. 남기는 흔적이 맥주와 참 닮았다. 그리고 왠지 마음에 든다.
지워내지 않아도 좋은 흔적이란 얼마나 기분 좋은지. 찝찝하지 않고, 해가 되지 않는, 오롯이 좋은 감정으로 뭉쳐야만 가능하다. 딱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