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음료_사이다
2020년 11월 5일, 오후 3시 39분
퇴근길 같았던 출근길. 흐린 하늘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햇빛이 꼭 노을 같았다. 환승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게 퇴근하며 보는 풍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주말을 목전에 둔 마지막 평일의 출근은 이렇다.
어제 출근하고 한 아이에게서 사이다 음료 한 캔을 받았다. 평소에 장난기가 많고 짓궂은 아이라 뭐 탔지! 하고 물어보았다.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잘 마시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마음 한 구석에는 왜 줬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남았다. 조금 바쁘고 정신없어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들이킨 사이다는 달고, 톡톡 튀고 맛있었다. 괜한 의심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함이 남았다.
그리고 오늘, 음료수의 정체가 밝혀졌다. 사실 나에게 주기 전에 왕창 흔들었었다고 말해오는 아이. 역시 의도가 있었어하는 마음과, 그 이유를 다음날에서야 밝히는 아이가 귀여워서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의도는 불순했어도 결국은 웃음이 되었으니까.
나는 탄산음료를 좋아한다. 특유의 톡톡 튀는 느낌이 기분 좋은 자극이 된다.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사람들을 만나는 일처럼. 여느 자극이 그렇듯 나중엔 결국 밍밍해지긴 하지만, 처음의 그 톡톡 튀는 맛을 못 잊어 계속 찾게 된다.
세상 모든 일과 관계가 그렇지만, 사람을 자주 만나는 내 직업은 이별도 잦다. 오늘 한 아이와 담담한 안녕을 해야 했고, 이런 이별은 언제 해도 익숙하지 않다. 나를 속 썩이고 때로 짓궂은 장난으로 날 화나게 해도 결국은 웃음으로 귀결되는 만남들이라.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웃음만큼 그들의 앞에도 웃음이 가득하길 바랄 뿐이다. 매번 다른 진로를 고민하다가도 결국 이 자리에 머무르는 건 그들의 웃음이 내게 탄산음료의 탄산 같은 자극이어서.
사실은 조금 지쳤다. 내 능력에 대한 의심과 별개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부담은 쉬지 않고 들키기엔 약간 버거운 것이어서. 어제 아이가 주었던 사이다가 자꾸 떠오른다. 끝 맛은 밍밍해져 결국 약간 남기고 버려야 했던. 맥주캔을 책상 위에 놓고,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을 틀어뒀다. 김이 빠져 바닥에 약간 남아 찰랑이는 맥주캔이 어제의 탄산을 그리게 만드는 건 역시, 아직은 내가 이 자극을 너무 사랑해서겠지. 조금은 허무한, 그래도 계속 찾게 될 그런 자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