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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19. 2021

바닥에 자라는 나무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18일, 오후 2시 54분


 일어나자마자 전 날의 숙취를 감당해야했다. 찌꺼기처럼 남은 지난 시간의 여파는 꽤나 찝찝했다. 다행이라면 조금 늘어져도, 조금 망가져도 괜찮은 주말이라는 것.


 망가진 모습 그대로 보여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과 김치볶음밥을 먹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잔뜩하고 나선 거리는 햇빛이 찬란했다. 부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이 계절은 늘 온기와 냉기를 함께 품고 있으니까.


 빛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어 바닥에 시선을 두고 걸었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모양새가 이 계절과 꼭 닮아있었다. 그리고 발견한 건 나무들. 바닥에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초록빛의 잎새도, 어두운 회갈색의 줄기도 없었지만.


 바닥에 자라고 있는 나무는 하나의 색으로 여러가지 느낌을 내고 있었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잎새들의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모습이 왜 위안이 되었는지. 해가 지면 사라질 환영같은 나무들. 내가 보낸 즐거운 시간들같았다. 위태로워서 더 소중한 순간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늘어져서도 어쩐지 거리에서 봤던 흐릿한 나무들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사라져가는 오늘, 그 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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