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여행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스마트폰이다. 심심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 때문에 뉴욕의 배경을 몇 번이나 놓쳤는지 모르겠다. 다른 삶을 들여다보고 고착된 인생을 조금이라도 흔들어보겠다고 14시간을 날아왔는데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다.
뉴욕에서는 시차 적응 때문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계획된 시간이 될 때까지 침대에서 뒹굴뒹굴 스마트폰만 봤다. 그렇게 3번의 아침을 보냈고, 마지막 날 아침에는 문득 뉴욕까지 와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14시간을 날아와서 한국과 똑같은 아침을 맞이하다니. 마지막 아침만큼은 이렇게 보낼 수 없어 침대를 박차고 나와 뉴욕의 아침길을 산책했다. 3번의 아침이 너무 아까워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자책만 하지 않았다. 나의 발등을 찍는 걸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만든 똑똑한 사람들에게 감탄도 했다. 도둑맞은 건, 집중력뿐만 아니라 여행도 마찬가지구나.
한국에서 혼자 있을 땐, 몇 시간이고 핸드폰에 갇혀 본다. 반대로, 공공장소만 가면 스마트폰의 경각심이 버저를 울린다. 대중교통에서 빠짐없이 고개 한번 들지 않는 승객들을 보면 스마트폰은 이미 그 이상의 존재였다. SF소설의 한 장면처럼 화면에서 뻗어 나온 환각제의 기운이 승객들의 시선을 수갑처럼 묶어두었다. 나라도 핸드폰에 질 수 없다는 심정으로 건너편에 앉은 사람을 뜯어보며 멍 때리거나 책을 꺼냈다.
JFK공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에서는 맨해튼이 가까워질수록 변하는 뉴욕의 풍경을 눈으로 담으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미리 준비한 유심칩의 오류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도 검색도 마음에 걸렸지만, 인터넷에 저장해 둔 일정표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다. 뉴욕 여행의 첫 번째 위기였다. 이 상태로 맨해튼에 내리면 숙소 위치도 몰라 낙동강 오리 신세가 될 게 뻔했다. 핸드폰이 뜨거워질 정도로 몇 번이나 껐다 켰지만 소용없었다. 옆에 앉은 한국인에게 용기 내서 물었다. 누가 봐도 말 걸면 예민할 정도로 피곤해 보였지만 지금은 배려가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혹시 인터넷이 잘 되시나요?”
“저도 아까부터 안돼서 포기하고 있어요. 아까 기사님께 여쭤보니 맨해튼에 유심칩 회사가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요.”
똑같은 위기를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와 안심이 된다. 그 옆에 앉은 여자분이 아내로 보였기 때문에 조심스레 유심 회사까지만 같이 가도 되는지 물었다. 아내분이 괜찮다는 듯이 끄덕하자 남편분도 좋다고 했다. 해결책이 마련되고 나니,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셔틀버스의 내부는 사방이 창문이라 어딜 봐도 바깥이 잘 보였다.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빨간 오픈카에는 한쪽 팔을 문에 툭 얹은 채로 오른쪽에서 운전하는 미국인 아저씨가 보였다. 스포츠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썼는데 미국 영화에서만 보던 풋볼 감독님 같았다. ‘미국이로구나’ 싶을 때쯤, 셔틀버스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었다. 영어가 빠르게 난무하는 DJ의 말은 내 귀를 스쳤지만, 물결 가득한 억양만큼은 뇌리에 꽂혔다. 비행기 활주로만큼 넓은 도로를 막힘 없이 달리며 듣는 미국 라디오는 뉴욕의 첫인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20분을 더 달리자, 뻥 뚫린 도로가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속도가 줄고 기사님이 고개를 숙인 승객들에게 말했다.
“이제 맨해튼이 다 와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동도 없었다. 나는 운전석과 먼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기사님께 들릴 정도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에 백미러로 보실 수 있도록 방끗 미소로 대답했다. ‘저 듣고 있어요. 기사님’ 잠시 후, 저 멀리서 피규어처럼 작은 건물들이 만든 마천루가 희미하게 보였다. 심장이 꼬집듯이 두근거렸다. 오늘의 이 유심 사태가 뉴욕의 마지막 위기이길 간절히 바라며 점점 커져 가는 건물을 봤다.
“고개를 들어보세요. 여기서부터 맨해튼입니다.”
스마트폰만 보던 승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피규어 같은 건물들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있었다. 도시보다는 건물로 이룬 올림푸스 신전이었다. 타임스퀘어 근처로 들어서자, 걷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도로가 막혔다. 덕분에 뉴욕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천천히 눈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