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시작
저는 예전부터 이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놀라움과 당혹감 정도로 지나갔습니다만, 점점 구체적인 희생자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관심의 첫 번째 계기는 아마 <성수대교 붕괴사고>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 당시(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제가 실시간으로 그 뉴스를 본 것은 학교에 이미 등교하고 난 후였습니다. 그날 저희 학년은 가을 소풍을 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 교실에 앉아 소풍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하고 있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소풍 날이라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수업은 없으니 담임선생님과 저희 반 학생들 모두가 교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요.
그때 헬리콥터에서 찍은, 한강에 떨어진 성수대교 상판의 모습과 그 위에 뒤집혀 있던 버스를 봤지요. 당시 사고가 났던 16번 버스는 강남에서 강북으로 넘어가고 있었는데요. 특히 강 북쪽(강동구)에 있는 무학여고, 무학여중을 향해 등교하던 중, 고등학생들이 많이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 했던 사건이었죠. 뉴스를 보면서 우리도 다들 남의 일 같지 않아 분위기가 싸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넘어가서 이 사건에 대한 기억 자체도 가물가물해졌던 대학교 1학년 시절.
어떤 여학생과 소개팅(미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학생의 학교도 기억이 안 나고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납니다만(워낙 그런 걸 많이 하고 돌아다니던 때라),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수대교 사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학생은 당시 사망한 학생들(무학여중, 무학여고)과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고 해서 조금 놀랬죠. 그러면서 그 학생이 한 정확한 이야기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대략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 당시 무학여중, 무학여고에는 강북, 강남 출신 학생들이 모두 다녔는데, 자신은 강북 출신이었다. 그래서 강남 부자 동네 살면서 같은 학교 다니는 애들이 정말 보기에 재수 없었는데, 사고가 난 날 사망한 학생들은 모두 강남 출신이어서 OOOOO다."
빈칸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사실 저도 정확한 기억은 안 나고 저런 뉘앙스만 기억이 나니깐요. 저는 그 학생과 대화하기 전까지는 성수대교 사건을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러고 나서부터 ‘대규모 희생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이 존재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제가 또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규모 희생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대규모 희생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
1997년 8월 6일, 괌에서 일어난 <대한항공 추락사고> 같은 경우에도,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고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는데요.
해당 사건으로 사망하면서 당시 돈 1천억 원의 유산을 남긴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의 유산에 대한 상속권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인 사건의 대법원판결이 2001년 3월에 나왔더랬죠. 결론적으로는 피상속인의 사위가 피상속인의 전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법대에서 공부하고 있던 저에게는 잊을 수 없던 사건으로 해당 사건은 곧 사법고시 2차 시험문제로도 출제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희생사건은 비단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4년 4월의 <세월호 침몰사고>, 2022년 10월 할로윈데이에 일어난 <이태원 압사사고>와 같은 희생사건은 매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대규모 희생사건과 희생자에 대해 점차 관심을 가져가던 중 저의 관심을 강하게 끄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주4.3사건>과 나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함경도 분으로 1951년 1.4 후퇴 당시 목선을 타고 노를 저어 남쪽으로 피난오셨고, 망향의 설움을 안으신 채 제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저와 함께 사시던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북北에 남기고 오신 할아버지의 형제분들 이야기, 집 앞에 흐르던 개천이야기 등을 두서없이 말씀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북한이란 곳은 그저 저 북쪽 어딘가에 있는 막연한 장소가 아닌, 꼭 찾아가야 할 구체적인 장소로 다가왔지요.
그렇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한국의 분단상황, 특히 그 분단의 초기에 극단적이고 대규모의 희생이 발생했던 ‘제주4.3사건’이었습니다. 저는 2019년 8월 부터 제주도에 빈번하게와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취재하기 시작했고, 2021년 2월에는 육지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이주했습니다. 그 와중에 2020년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하는 제2회 영상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21년에는 제주작가회의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제주4.3사건’은 겉보기에는 시·공간적으로 한정적인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국주의 식민사관과 냉전의 대립이 함축되어있는 상징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한반도 최북단 함경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1947년에 일어난 사건이 2022년의 '나'라는 사람을 제주도까지 오게 했는지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정답! 정답?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답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다만,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대규모 희생을 발생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보다 중요한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돈? 사상? 아니면 체면이나 지위? 정답은 잊고 다양한 시선을 생각하며 글쓰기를 시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