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저에겐 좋아하던 사람에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어요.(뭐 물론 그게 첫 경험은 아니었지만요) 가열하게 거절당하면서 왜 우리는 과거의 가슴 아팠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시 고백이라는 걸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끔은 그 과거의 기억을 빨리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가 있었어요. 망각의 동물이니 쉽게 잊어버리고 새롭게 고백할 대상을 찾으면 쉬울 텐데, 나의 자존심을 깔아뭉갠 누구 씨가 계속 생각나서 오랫동안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하고요.
배정환 님의 저서*(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라)에 보면 부정적인 신념의 속성에 대해 앤서니 라빈스의 말을 인용했어요.
영속성 : 영속성은 한 번 나에게 발생한 일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파급효과 : 파급효과는 하나에 문제가 생가면, 다른 것들도 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격화 : 하나의 문제 때문에 자신이 문제투성이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위 세 가지 개념들은 따로 오지 않고 어쩐지 한꺼번에 와서 우리들을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고백했던 남자에게 거절당했다고 해서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계속해서 내게는 안 좋은 일들 뿐 인 것처럼 굴었던 것, 상대방의 거절의 이유가 어쩐지 내게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나는 매력적이 못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 마냥 굴었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기분보다는 거절당했다는 그 기분이 더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더랬죠. 왜 내가 그런 사람에게 거절을 당해야만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죠. 에이, 다들 그런 경험 한 번씩은 있고 그러지 않나요? (^^)
저자는 영속성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제의 상황이 절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하나를 실패한다고 해서 다른 무엇과 연관 지어서도 안된다고 합니다.(파급효과) 뭐든 다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아이처럼 공부는 별로여도 그림엔 소질이 있을 수 있고, 제 남편처럼 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기계를 잘 다룰 수 있고, 저처럼 운동은 젬병 이어도 요리엔 그럭저럭 실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한 가지를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모든 것에 실패한 사람으로 치부해서도 안돼요. 저자는 이것이 문제를 대하는 가장 나쁜 태도라고 해요.
부정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매일 일정량의 독극물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 번에 죽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내 몸이 말라 갑니다.
저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제가 좋아했던 사람의 거절은 저를 꽤 오랫동안 낙담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저 스스로 저를 깎아내렸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나는 어쩐지 나 스스로도 나를 인정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저의 왜곡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아요. 거절당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을 '거절당했다'라고, 어쩐지 내가 굉장한 피해를 입은 것처럼 생각했던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죠. 저의 그릇된 피해의식이 만들어낸 어떤 프레임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낌없이 주었던 내 마음에 비해 돌아오는 상대방의 내 감정에 대한 인정이 너무 빈약하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이 세상엔 서로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데 그가 저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저는 스스로도 저를 저도 모르게 깍아내렸던 거예요.
깨달음은 번개처럼 오기도 합니다. 퇴근길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멍하니 늘어선 차량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자의 말처럼 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독극물과 같은 나쁜 생각이 매일 저를 말라죽게 하고 있다고요. 상대방의 거절로 마음 아파하기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지독한 프레임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역시 상대방의 모진 거질보다는 내가 더 소중했고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나를 더 감싸주면 될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깨닫게 되었답니다. 좀 더 빨리 알게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은 제게 가르침을 주며 그 가르침은 남은 인생의 교과서가 되어 줄 것임을 믿어요.
그래서 어떤 슬픔과 어려움과 실패가 있다 해도 우리 기꺼이 이겨내는 과정을 마다하지 않기로 해요. 그 이겨내는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배울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을 테니까요. 나를 아껴주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헤쳐 나오기만 한다면 더 큰 선물이 제게 올 테니까요.
언젠가 개그방송에서 장도연 님이 양세찬 님이었나 아마 맞을 거예요. 아무튼 상대방에게 소리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 가슴에 콕 박혔습니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너인데 왜 내가 너에게 미안해해야 하냐고요. 날 사랑하지 않는 네가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맞아요. 사랑한 누군가에게,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이젠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기로 해요. 내가 부족해서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그저 맞지 않는 사람들일 뿐인 거예요. 자신에게도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기로 해요. 많이 배웠으니까요. 옷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앞으로 걸어가요. 분명히 더 멋진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