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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Mar 25. 2023

쑥쑥 자라 버린 마음이 무의미해지는 일

우유부단함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기는 하는지요

무슨 이야기를 적어야 할까. 이 관계의 종지부를 적게 된 날에 대한 마음들을 써 내려가야 할까. 글쓰기가 사람의 마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는 글이다. 오늘의 나는 몹시 별로였고, 오늘의 내가 한 행동들이 때때로 나를 버겁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를 사랑하지 않음에 대한 태도이지 않았나 싶다.


되려 화를 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여러 사람들이 화를 내줬다. ‘그래, 내편이 있으니까 되었어.’ 나는 충분해라고 말하고 다독거린 내 마음은 사실 그러면 안 됐다. 더 처절하게 네가 그러면 안 됐지,라고 화를 냈어야 했다. 사실상 그럴 만한 에너지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가 내 맘과도 같지 않으니까.


어쩌면 일기나, 혹은 감정쓰레기통이 되어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적는다. 얼마 전 좋은 관계로 발전하고자 했던 사람은 이중으로 썸을 탔다. 사실 나는 썸을 그렇게 오래 끄는 편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그 애매모호한 규정되지 않음이 싫기 때문이고, 그래서 벌어지는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번 상대는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고 나의 마음에 대해 시간을 달라고 했기 때문에 존중해 주고 시간을 줬다. 그런데 그게 뒤통수를 맞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그 생각하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해 타격이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그 사람이 나를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을 버거워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니 용기는 내가 내본다며 저지른 나를 탓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말의 희망이라던가 아쉬움이라던가, 더 어떻게 해볼걸 하는 생각 없이 끝내주게 많이 잘했다. 나 스스로에겐 자랑스럽다. 이것이 누군가가 보기엔 단점이라 할지라도, 나는 내 표현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 더 좋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당장 간 보다가 좋은 사람을 놓칠 바에야 확실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나를 옭아매는 일이라는 것조차 안다. 너무 빠르게 감정을 표현하고, 무르익는 시간까지 필요함에도 일단 던지고 본다. 아닌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음이겠다. 썸을 규정하고 재단하고, 이 사람이 나와 맞네 맞지 않네를 판단하기엔 사귀고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비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서로의 가치를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에 대해 많은 것을 잰다. 재력은 얼마인지, 학벌은 얼마인지, 종교가 맞는지 사회적인 시선이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해있는지. 물론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애초에 아닌 건 거르고 가자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미 사람이 사람을 향한 마음이 쑥쑥 커지고 난다면, 그 모든 문제들은 맞추어 가면 되는 문제 아닐까. 그러다가 맞추지 못하는 어떤 지점에 봉착했을 때, 서로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렇게 또 한 단계 성장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정말 아닌 것만 제한다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관계라고 여겨왔는데, 왜 그것이 이상한 시대가 되어버렸나. 과거에도 그랬던가. 어른들의 사랑이란 원래 이런 건가. 그럼 다들 선을 보지 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할까.


정말 이번엔 맞겠구나 싶어서 키워버린 내 감정이 고스란히 나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구나 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아니 애매한 태도로 나의 상상력을 키운 상대에게, 그 애매모호함으로 상처를 여러 번 받아버린 나 스스로에게, 나는 나를 지켜내지 못하고 되려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그 일말의 관계라도 유지하고 지켜보려고 애를 썼던 오늘의 내가 안타깝다. 안쓰럽게도, 모두가 욕해줄 때 나 자신은 ‘나를 위해서’ 상대에게 욕조차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또 나를 갉아냈다. 괜찮아요. 우린 잘 정리된 것으로 하죠. 행복하세요.라고 되려 말했다. 상대가 두 명과 썸을 탄게 문제였던 건데, 별 시답지도 않은 사람에게 왜 나는 목을 매듯 그렇게 간절하게 대했나. 아니 애초에 간절함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보이도록 한 거다.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었던 단순한 사람의 욕심일 뿐이었던 것이다. 네가 내 것이길 바랐던 이유는 그저 갖지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괏값을 알고도 그 텐션을 유지하려고 했고, 내 자리를 지키려고 했던 건, 단순히 내가 내입으로 뱉어낸 말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거절이 더 명확했어야 했다. 즐길건 온전히 다 즐겨놓고, 너무너무 미안한 듯 말하면 안 됐다. 나는 두고두고 말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겠다 말한 것이다. 당신이 좋은 사람인건 변함없겠지만, 당신의 나쁜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 마음은 어떻게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겠지. 그런 불필요한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받은 상처로 인해 모든 이성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이다. 아주 쑥쑥 자라 결국 나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될 상황에 당도하겠지. 타인의 사랑 따위 믿지 않겠다며, 이성의 사랑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결국은 성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나는 또 모두에게 물을 것만 같다.


이 치욕을, 나는 잊을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데에 에너지를 쏟고 있을 내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지니까, 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살겠다. 겨우 그 정도의 사랑에 안주할 내가 아니다. 더 사랑받으며, 더 멋지게 살 거다. 그리고 너는 잊지 말아라. 평생 누군가에게 너의 우유부단함이 엄청난 큰 상처를 냈다는 걸 기억하며 뼈저리게 후회해라. 그게 내게 속한 복수가 아닐지라도, 너는 그 마음 때문에 불편해하고, 불안해하고, 같은 일을 또 똑같이 경험하길 바란다. 인생은 인과응보다. 재단한 사랑이 얼마나 가는지 보자. 비겁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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