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순례길 14-15일 차: 평점낮은 숙소의 비밀

미니멈 텐유로

by 탱탱볼에세이

원래 어제 도착해야 할 숙소에 오늘 왔다. 포르투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3일 전에는 미리 예약하라는 후기를 봐서 3일 전에 예약했는데 벌써 자리가 다 찼다. 예약 시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셈이다.


다행히 전화통화가 없이 손쉽게 사이트로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다. 또한 장기숙박이 가능하다. 보통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는 1박이 원칙이라 파격적인 조건이다. 1박엔 15유로로 포르투 숙소치고 저렴한 가격이다. 다만 2박부터는 도시세 2유로가 붙어 17유로다. 그래도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이라 3일을 묵을 예정이다. 이것이 순례자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그래서 단순히 숙소 때문에 일정을 조정했다. 왜냐면 순례자의 신분으로서만 묵을 수 있는 알베르게 혜택을 최대한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이층 침대 신세지만 일반 호스텔 가격보다 저렴하고 순례자 동지들을 매번 만날 수 있는 곳이니까! 이제 곧 순례가 끝나면 이 알베르게가 사뭇 그리워지지 않을까.


원래는 안 묵어도 되는 숙소에 묵게 되었고 하루는 거의 걷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마을에 멈췄다. 처음으로 숙소 걱정 없이 멍 때리며 바다 볼 여유가 생겼다. 생각해 보면 바다를 볼 여유도 없이 순례길을 걸어왔더라.


여유를 찾기 위해 온 길이지만 그마저도 여유를 갖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멈췄는데도 뭔가 그 여유가 불편했다. 쫓기듯 매일을 달려온 사람에게 쉬라고 한다고 그것을 단번에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줄곧 그래왔던 게 아닐까.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려있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은 내가 있는 곳이 외국인지 한국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결국엔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주변 상황에 조바심 내지 말고 내 속도와 방향을 믿고 여유를 챙기길 바라본다.


그래서 어제오늘 똑같이 10유로 숙소에 묵었다. 같은 값인데 뉘앙스의 차이가 있었다. 어제는 그냥 10유로였고, 오늘은 기부제인데 최소 10유로였다. 관리자는 기부제인데 미니멈 텐유로를 강조했다. 돈은 본인에게 지금 주면 된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다. 프리미티보길에서 손에 직접 건네는 것은 경험해 보았으나 거기에 최소 금액을 밝히고 요구하는 방식의 기부제는 또 처음이라 문화충격을 받았다. 역시 보편적이지 않은 방식엔 적응기간이 필요한가 보다. 원래도 10유로를 내려고 했으나 10유로가 최소한이라고 하니 뭔가 적은 금액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큰돈은 아니긴 하다.


같은 값이니 어제오늘 숙소가 더 비교된다. 물론 둘 다 담요를 제공하여 따뜻하게 머물 수 있었다. 어제는 1층 오늘은 2층. 어제는 나름 깔끔한 숙소, 오늘은 오래된 숙소. 비교할수록 어제가 더 그립다. 왜 오늘 숙소가 구글 맵에서 리뷰테러를 받았는지 단번에 이해된다. 오늘 숙소 관리자가 영어는 더 잘하고 더 접객은 전문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영어가 어설프고 순한 성미를 가진 관리자가 그리웠던 것일까. 아니면 숙소가 최신식이고 쿠키를 제공했던 시설 덕분일까. 아님 기부제의 가장 큰 부분이 자율성 있게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인데 그것에 최소한의 금액을 설정해 둔 것에 알레르기가 생긴 것일까.


거기다 한 번도 순례길 내내 코골이 때문에 못 잔 적이 없는데 오늘은 정말 대단한 코골이를 만났다.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가 옆 침대 1층에서 들려와서 새벽 2시에 깼다. 실제로 어젠 20개 남짓 오늘은 60개의 침대가 있을 정도로 인원이 한 방에 많다.


높은 확률로 코골이를 만날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었던 셈이다. 구글 맵 리뷰가 경고했듯이 나에게도 결국 여기가 최악의 숙소가 되었다. 역시 경험해 보니 왜 이렇게 평점이 낮았던 것인지 현실감 있게 이해된다.


결국 이것은 나의 하나의 글쓰기 소재가 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 되었다. 미니멈 텐유로. 북쪽길의 구에메스 알베르게를 보며 숙소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기부제에 최소금액을 설정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나조차 그 현실을 마주했을 때 대단히 불편했다. 아마 구에메스에서 10유로를 최소한으로 내라고 했다면 찬물 나오는 것에 볼멘소리가 더 심했을 것이다.


순례길 1,000km를 걸으며 거의 50곳에 달하는 알베르게에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숙소의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만 적기에도 책 한 권이 나오지 않을까. 분명 오늘의 숙소는 최악의 숙소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결국 이 숙소 덕분에 10유로에 무사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이 있어서 내가 포르투 가는 것을 하루를 미룰 수 있었다.


어쩌면 숙소를 바라보는 방식도 나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결국 내 마음을 고쳐먹어야지. 이제 순례길이 끝나면 10유로엔 절대 어디서든 못 묵어! 순례자로 살면서 잠시 깜깜했던 현실에 눈을 뜰 시간이다. 자, 이제 순례길의 마지막 도착지인 포르투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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