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이 구한 파파게노

세상을 배우다 3 - 손을 잡아주세요

by 툰자

10년쯤 지나면 조금 덤덤해질 줄 알았다. 설리에 관한 기사로 SNS가 요란하던 날, 내 마음도 사정없이 흔들렸다. 설리를 잘 몰랐다. 아이돌 가수라는 건 알았지만, 몇 번 읽은 그녀에 관한 기사들은 대부분 옷차림이나 연애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녀의 본명이 ‘최진리’라는 것도 그날 알았다. 이름을 보자마자 2008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난 배우 ‘최진실’이 떠올랐다. 이름도 비슷한 두 여자 연예인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고 눈앞이 뿌예졌다.

최진실이 떠난 날, 서른여덟의 나는 둘째를 낳기 위해 분만 대기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전날 밤 10시에 양수가 터져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자궁문이 거의 열리지 않은 상태라며 태아를 위한 기본 체크만 했다. 당직 간호사가 아기의 호흡이 불규칙하다고 계속 관찰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불룩한 배 위에 부착했다.

의료 기계에 연결된 여러 개의 줄 때문에 밧줄에 묶인 것처럼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으나 한 번 돌아 눕지도 못한 채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했다. 호흡이 불규칙하다던 아기에게 별다른 증상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간호사는 여전히 아기가 나올 기미가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출근하면 분만 유도 주사를 놓을 거라고 했다.


분만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함께 밤을 새운 남편은 초조해 보였다. 새로 시작한 일을 누군가에게 부탁할 형편이 아니었다. 아직은 서먹한 거래처에 전화 한 통으로 사정을 봐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래서 급한 일만 처리하고 온다는 남편을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어머니가 올 거라며 안심을 시켰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분만 대기실에 홀로 누워있는 나이 많은 산모가 안쓰러웠나 출근한 간호사가 내게 묻지도 않고 TV 모니터를 켜 주었다. 갑자기 ‘최진실 사망, 자택에서 자살’이라는 문구와 그녀의 생전 모습이 나왔다. 무서웠다. 소설 속의 복선처럼 느껴져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눈을 감아도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제발 모니터 좀 꺼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간호사를 부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지 14시간 만에 시어머니 손을 잡고 분만실로 이동했다. 자연분만을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아기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 아기도 힘들다고 수술을 언급했다. ‘제왕절개’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를 악물고 힘을 모았다.

“아기가 나와요.”

“축하합니다. 왕자님입니다. 애쓰셨어요.”

간호사와 의사의 말에 오그라들었던 근육이 밀가루 풀처럼 주르륵 흐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해냈구나!’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기랑 남편에게 떳떳하다고 생각한 후에는 푹 자고만 싶었다. 그때 간호사가 아기를 씻겨 내게 데려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기의 오른쪽 귀가 작아요. 소이증입니다.”

“네?”

내 품에 들어온 아기를 바라보았는데 오른쪽 귀가 너무 작았다. 귓구멍도 없이 손톱만 한 살점이 붙어 있었다. 아침에 홀로 모니터를 보았을 때처럼 눈을 감았다. 간호사가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가고, 나는 회복실로 와서 어머니를 만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자고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잠들지 않았는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일어난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어머니만 믿고, 정신없이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남편도 넋이 나가긴 마찬가지였다. 그도 말이 없었다. 그게 야속했다. 딱 한 마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결국 죄책감에 사로잡혀 잠들 수 없는 밤에 최진실이 떠올랐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왜 하필 오늘이어야 했냐고 원망했다. 아기가 살아보겠다고 세상에 나온 그 날에 나는 처음 세상을 버리고 싶었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공중파 방송은 연일 최진실 관련 보도만 반복했다. 진실과 루머의 경계에 있는 얘기들이 그녀의 가족들과 지인들, 기자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나왔다. 들을 때마다 내 마음속도 캄캄해졌다. 진실은 사라졌는데 상처는 점점 더 깊고 넓어졌다. 베르테르 효과처럼 2008년 10월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버렸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조차 유독 여자 연예인들을 더 가혹한 잣대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풍토가 가슴 아프다. 어쩌면 최진실과 최진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라 연예인이기 전에,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시한 미디어에 희생된 것이 아닐까? 그들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루머를 애용하고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대중이 이 세상 밖으로 밀어낸 것은 아닌지, 대중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베르테르 효과와 반대 개념으로 ‘파파게노 효과’라는 말이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인물, 파파게노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이때 요정 셋이 나타나 희망찬 노래를 들려준다. 위로를 받은 파파게노가 힘을 내 종을 치자 사랑하는 파파게나가 다시 나타난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파파게노 효과’란 자살 관련한 언론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한 보도를 통해 자살을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를 낳았을 때 나를 비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기가 아픈 것은 엄마 책임’이라는 오래된 사회 통념에 스스로 사로잡혀 괴로웠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나에게도 요정들이 있었다는 것. 바락바락 울며 젖을 달라는, 방실방실 웃으며 안아 달라는 어린 존재와 소리 없이 다가와 아기 손수건을 챙겨주던 큰아이. 자신의 어깨가 무거웠지만 나를 보살핀 남편. 멀리 서울에서, 대전에서 달려와 내 손을 잡아주던 친구들, 형제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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