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갔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내게 숙제를 주셨습니다.
교육청에서 환경에 관한 사례집을 발간 하면서 학교마다 학생과 학부모의 글을 보내라
고 했으니 하나 써 오시라고.....
운영위원회에서 학교급식실의 세제사용에 대해 조금 언급했던것이 환경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라는 인상을 주었나봅니다.
딱이 환경보호를 위해 한것도 없어 그냥 생각나는대로 썼습니다.
<안골댁의 환경일기>
결혼 이후 수차례 이사를 다녔는데 살던 곳이 모두 산기슭이나 공원을 끼고 있거나 한적
한 변두리 마을이었습니다. 식구가 늘면서 편하게 정착을 하자고 결정한곳이 남들이 다
좋다는 아파트였지요.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살 수 있고 자장면이든 휴지든 번호만 대
면 현관까지 대령하니 그 편리함이 가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이상
한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장대비가 내리는데도 빗소리가 안 들리고 현관문을 닫아버리
면 상자속에 들어있는 느낌이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의 꼭대기만 보이니 참으로 황
당한 일이었습니다. 갓난이를 업어 재우려 해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주차장 같은
아파트 마당을 서성거려야 하니 도무지 정이 붙지를 않았습니다.
우리에 갇힌듯한 불안감과 우울속에 날을 보내며 1년을 가까스로 지낸뒤 산속의 외딴집
을 발견해 이곳 안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포장 오솔길과 마당, 제법 넓직한 텃
밭과 뒷산, 청설모와 꿩들을 지척에 두고 사니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생각과 정서가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집 주변의 정리를 끝낸후 전원의 신선함을 만끽하고자 뒷산의 능선을 따라 산책을 나갔
지요. 부드러운 흙길과 잡목들의 열병을 상상했던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산너
머 공단에서 버린듯한 폐기물들과 대형 쓰레기들......쓰레기 자루들은 농로의 한켠에
도 어김없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인적이 드믄 곳이기에 던져 놓기가 좋은가봅니다. 텃밭
의 한켠을 보니 언제 쓰던 것인지 폐비닐들이 널려 있습니다. 어느 밭을 보나 비닐의 도
움 없이는 농사가 힘든가봅니다.
산새 소리에 아침잠을 깨려던 꿈도 무산되었습니다. 대형트럭의 주차장이 집 건너에 있
어서 시동을 거는 소리와 배기가스에 빼앗긴 새벽은 해가 떠올라 공기가 데워져야 비로
소 배기가스가 올라가고 제 모습을 찾습니다. 그 배기가스는 아마도 오존층 어딘가에 걸
려 있을 것입니다.
잘 자란 벼를 보며 아이들과 신작로를 걸었습니다. 초록빛에 눈이 시원했지요. 그런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 저쪽 논에서 약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신경세포를 건드려 우울
증을 유발한다는.....그래서 농촌지역의 자살율이 더 높다지요. 공기 좋은 시골에 산다
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벼논, 고추밭에 뿌려지는 농약에 노출된 것이 더 심란한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우리집 쪽에는 논이 없고 콩밭이어서 농약냄새를 많이 맡지는 않
습니다.
막내는 젖소 목장을 지날 때면 환호를 합니다. '소야~' 부르면서 한참을 놀다 가지요.
그런데 여기저기 산재한 소규모의 목장과 개 농장들이 폐수처리는 제대로 할까 의구심
이 들었습니다. 개를 키우는 곳에서 도살도 하는 것 같은데 그 오폐수는....... 우리집
지하수가 좋다고 소문은 났지만 여과기를 하나 사서 걸러먹습니다. 지하수를 오염시키
는 주범에 나도 속하니까요. 집이 외지다보니 하수도 시설이 없습니다. 관을 묻기는 했
어도 개천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남의 밭 옆으로 우리집 하수가 쏟아집니다. 그러니 시커
멓게 썩은 웅덩이가 생겨 지난겨울 망년회 때 우리집에 놀러왔던 아이 하나가 발목까지
빠져 고약한 냄새를 풍겼었습니다. 하수도 시설이 없는 농촌의 수세식 화장실은 참 골칫
거리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재래식으로 돌아갈 용기는 절대 없는 안골댁 입니
다.)
길모퉁이에 음식물 쓰레기를 들어 붇는 양옥집 며느리와는 두 번이나 말다툼을 했습니
다. 썩는 것이라고 묵은 김치까지 버리는 바람에 학교 오가는 아이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일에 간섭한다는 눈흘김에도 아랑곳 않고 참견한 덕분에 요즘은
심한 것은 안 버립니다.
장을 보아올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겨오는 비닐과 플라스틱을 보면 마음이 쓰립니다. 썩
지도 않는 이것들을 어찌 할거나.....큰길에서 떨어진 집이라 쓰레기를 실어가는 차는
들어오지도 않아서 종이들은 쓸쩍슬쩍 소각하는데 저 비닐을 태우는 것은 다이옥신을 생
산하는 꼴이고.....어렸을 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가면 신문을 접어서
담아 주었었습니다. 식용유도 유리병에 받아 왔었고....30년 조금 넘은 세월에 이렇게
도 많이 변한 것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나는 올해 내가 직접 퇴비로 기른 배추로 김장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생협에 가입해서
유기농 먹거리와 유정란을 사다 먹습니다. 그러나 워낙 방대한 오염 앞에서 그 작은 가
림은 몸부림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자급자족을 한다해
도 산성비는 피할 수 없듯이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와 그 다음 세대에 생각이 미치면 너무도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쓰는 환경일기에 주제를 정해주며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영리하게 자라
서 환경에 해가되지 않는 물건들을 만들어 보거라. 물로 가는 자동차도 좋고, 완전히 분
해되는 비닐도 좋고, 땅이 살아나는 비료, 고기를 대체할 맛있는 단백질, 짧은 생을 살
아가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냥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친화적인 세상을 만들거
라....... 큰 숙제를 떠안은 아이들을 키우며, 캡슐같은 청정환경을 마련해 주지는 못하
지만 좋은 것 나쁜 것을 분별할 지혜는 갖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의 아이들
은 마당 평상에 누워 은하수를 보는 것이 그냥 일상이길 꿈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