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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4. 2024

이사하던 날

포장이사를 하지 않고 교회 식구들의 손을 빌리기로 했기 때문에 이사하기 며칠전부터


짐을 쌌다.



게다가 이사갈 집의 수리를 보름 가까이 하니 집은 그야말로 '이사갈 집'분위기였었다.



이사 전날, 아무래도 아마추어들끼리 그 크고 많은 짐을 옮기는 것이 무리다 싶어 장농


이나 냉장고, 피아노처럼 무거운 짐은 이사짐 센터에 부탁해서 옮기기로 했다.



아침 열시에 사람들이 왔다. 그런데 신발을 신은채로 거실로 척척 걸어들어온다.



신을 벗으면 힘을 쓰기가 곤란하단다. 그리고 어차피 큰 짐들 들어내면 그 밑의 먼지 때


문에 신을 신는 것이 당연하리라.



우리도 처음 5분 가량만 신을 안신고 미적거리다 나중에는 같이 신발로 돌아다녔다.



아현이는 굳이 신발을 벗겠단다. 그냥 신으라고 해도 울상이 되어 싫다고 한다. 집안에


신을 신고 들어간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나보다.



새집에다 큰 짐들을 부려놓고 그날 밤부터 새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본격적인 이사


를 하기위해 살던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신을 신은채 들어선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가 앉아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내 아이들이 뒹굴던 이곳에 무지막지하게 신을


신은채 들어가 함부로 밟고 다닌다는 것이 마치 그 집을 유린하고 배신하는 것 같았다.



다른곳은 추워도 그곳만은 항상 절절 끓던 가운데방......두꺼운 이불을 쓰고 누우면 찜


질방이 따로 없다며 그 아늑함을 즐겼었다.



안방......큰 창을 열면 건너편 해주네 인이네가 다 보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던 비포


장 나무터널길이 풍경화처럼 펼쳐지던 곳, 아침햇살이 너무도 눈부셔서 커텐을 치지 않


으면 아침잠을 잘 수 없었지.



침대방.....아이들의 옷가지와 장난감으로 항상 발디딜틈 없이 어질러지고 날이 가물면


송충이같은 까만 벌레가 예닐곱 마리씩 벽을 기어다녀 기겁을 했지만 그 방에서는 우리


텃밭이 보이고 뒷산이 보인다.



거실, 부엌, 창고......모든 물건이 익숙하게 그 자리에 있었고 하루에도 수 없이 밟고


만지던 그 공간들이 순식간에 뒤집혀지고 엉망이 되어 버렸다.



코끝이 시리고 눈물이 솟아서 어찌할 바 모르다 바쁜 일들에 묻어버렸다.



정신없이 이사를 마치고 다음날은 청소를 하기위해 또 갔다.



먼지덩어리와 함께 굴러다니는 몽당연필......다 쓴 공책......부서진 장난감.......말


끔히 말끔히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우리 가족의 체온과 추억이 담긴 그것들을 싹싹 쓸어


담았다.



뒤에 이사올 사람들이 쓸만한 물건들이나 항아리 몇개는 남기고 맛있는 그집의 지하수


를 두통 담아 싣고 이젠 아주 떠난다.



낡은 지붕과 더러운 벽, 깨어져 나간 앞마당의 차양이며 너덜거리는 모기장으로 멍청히


웅크린 우리집은 나한테 인사도 없다.



그냥 멀뚱히 앉아 바보같이 슬픈 눈빛으로 보기만 한다.



고맙다. 그동안 극성맞은 우리 아이들 잘 키워줘서......겨울이면 하얀 눈을 잔뜩 이고


서 우리 식구 도란거리는 얘기에 귀 기울이고, 여름이면 뜨거운 햇살 가려가며 그 서늘


한 품으로 낮잠 솔솔 재웠지.



아이들은 새로 가는 집이 훨씬 좋다는구나.



학교 다니기도 편하고 조금만 나가면 가게도 있고 이층집이라 계단도 있어서 좋다는구


나.



밤나무, 은행나무, 딸기밭......미련없이 훨훨 두고서 쪼르르 새집으로 이사갔단다.



**********


요즘도 가끔 그 마을에 간다.



임자를 잘 만나서 우리가 살 때보다 더 깨끗해지고 근사해졌다.



낡은 한지였던 벽은 멋진 도배지로 단장하고 띠벽지까지 둘렀다. 장판도 새로 하고 차양


도 새로 올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촌놈 때빼고 광내고 멋부렸군.......)



새집은 아직도 낯설다.



얼마나 지나야 그만큼 정이 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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