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탱볼에세이 Aug 08. 2023

엄마랑 아침운동, 아빠랑 저녁운동

그리고 커피가루

 엄마랑 아침운동을 하게 된 후로 일찍 일어나고 있다. 매일 아침 7시 기상이다. 근처 저수지까지 찍고 돌아오는 코스다.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가서 목적지인 저수지에서 꼭 마셔준다. 나는 꼭 목적이 있어야 움직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금방 시작하지만 목적이 흐릿해지는 순간, 실행력이 약해진다.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내게 좋은 당근이 되어준다.


 엄마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주말에도 절대 쉬지 않으신다. 덕분에 시작한 지 일주일 됐는데 아직 개근이다. 오늘은 엄마가 요가를 가는 날이라 코스를 바꿨다. 토스에서 20원 주는 보건소를 들렀다가 반대편 카페에 커피가루 주으러 다녀오는 경로. 걷는 것은 짧았지만 목표한 티끌을 모아서 유난히 뿌듯한 마음에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엄마랑 면내(시내 아님)로 나갔다. 엄마는 주민센터에서 9시 요가를 하신다. 8시 40분부터 준비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갔다. 나는 엄마가 요가하는 1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본다. 도서관 근처에 주차를 하고 보건소랑 우체국에 걸어 다녀왔다.


 왜냐면 토스에서 20원을 주는 장소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엔 보건소 딱 한 곳만 20원을 주는데, 면내에 가니 두 곳이나 더 있어서 눈이 돌아갔다. 사실 도시에선 20원 주는 곳이 지천에 널려도 찾아서 가지 않았다. 시골에 내려오니 20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아서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게 된달까.


 도서관이 9시에나 문을 열어서 사실은 기다리기 심심해서 걸었다. 처음에 지도에 도서관이 2개라 이 작은 마을에 2개나 있다고 의문을 품었다. 오늘 마침 궁금증을 해결하러 지도에 나온 다른 도서관 위치를 가보니 없더라. 카카오 지도에 위치 이전했다고 신고했다. 나는 헛걸음했더라도 그다음에 방문하는 누군가는 헛걸음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은 도서관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파트에서도 500세대 이상이면 설치의무가 있는 바로 그 작은 도서관! 수도권에선 주변에 작은 도서관이 있어도 가보지 않았는데, 여긴 주변에 작은 도서관 하나라 소중하다. 이름이 작은 도서관이라 책도 적을 줄 알았는데, 꽤 많더라. 설립 기준에 최소 1천 권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엄마의 요가일정에 따라 매주 화, 목요일에 나는 도서관을 갈 것이다. 나의 첫 동네 아지트가 생겼다.


 아빠가 퇴근 후 집에 오셨다. 우린 바로 밭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밭이 있다.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날이 더워서 큰 마음을 먹고 간다. 금방 땀으로 적셔졌다. 가는 길에 또 카페가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커피가루봉지 두 봉지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땀과 커피가루를 맞바꾼 셈.

 

 오늘의 미션은 보도블록을 까는 것이었다. 따란. 시골에 오면 머리도 써야 하지만 몸을 쓸 일이 많이 생긴다. 물론 시간도. 이렇게 엄마 아빠는 시골에서 고생하고 계셨다. 사실 자주 놀러 와서 알고 있었지만 굳이 외면해 왔다. 오랜만에 집안일에 참여해 봤다.


 손수레에 벽돌을 실어다가 열심히 날랐다. 예기치 못한 저녁운동을 했다. 흩어져있는 벽돌을 모두 한 곳에 정리하고 나니 보람차더라. 오늘 보도블록 깔기는 기반만 다졌다. 다 깔려면 아직 멀었다. 이미 아빠엄마가 대부분을 깔아 두셨는데, 이걸 어떻게 두 분이서 다했지 싶었다. 두 분 다 체력도 체력인데, 대단한 끈기를 가지신 게 분명하다.


 중간중간 소나기가 조금씩 내렸다. 비 온 뒤 무지개를 보고 엄마는 소녀가 되었다. 곧 태풍이 상륙한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더라. 엄마는 감성적이고 난 이성적인 사람이구나를 바로 느낄 수 있다. 너무 더워서 시간이 언제 흐를까 싶었는데 벽돌 나르다 보니 저녁 7시가 되었다. 비닐하우스를 꽁꽁 싸매고 다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커피가루 두 봉지를 발견해서 가져왔다. 의도치 않게 커피가루 다섯 봉지 주운 날이 되었다. 심마니가 된 기분이다. 커피가루는 시골에서 특히 유용하다. 밭에도, 화단에도 유용한 거름이 되어준다. 오늘 유튜브 보다가 커피가루의 또 다른 쓰임새를 찾았다. 프라이팬의 기름기를 닦을 때도 제 격이란다. 앞으로도 커피가루 열심히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타오른다.


 엄마랑 아침운동, 아빠랑 저녁운동을 했다. 하루 1만 보는 걸어야지 생각만 했는데, 엄마아빠를 따라다니면 쉬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엄마아빠를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그럼 건강도, 꾸준함도, 20원도, 유용한 커피가루도 얻지 않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에서 온라인 농사짓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