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하야오의 은퇴번복작
드디어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를 기다린 이유는 4가지다.
1. 올해로 82세인 미야자키하야오는 이미 10년 전 [바람이 분다]라는 작품을 끝으로 은퇴했었다. [벼랑 위의 포뇨] 이후 [바람이 분다]의 제작기간이 5년이나 걸렸고 더 이상 작품 만들기가 버거웠으리라. 하지만 손자에게 자랑스러운 작품을 남기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2. 지브리스튜디오 최장 제작기간 7년 반 소요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컷을 다 손으로 그린다. 1분 장면 만드는데 1개월 걸리는 편으로 제작기간 10년 예상했다고 한다.
3. 지브리 역사상 영화 최다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지브리스튜디오가 제작비 100%를 자체 충당한 작품이다.이 작품을 위해 넷플릭스에 전 세계 스트리밍 판권 판매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4. 개봉하고 홍보가 전혀 없던 영화로, 신비주의라 더 주목받았다. 조금이라도 내용이 스포되면 이야기의 김을 빼게 할 터. 오랫동안 미야자키하야오 영화를 기대한 관객을 위한 배려가 담겨있다.
스포 없는 감상평
그동안의 미야자키하야오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와서 반가웠다.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귀엽고 다정한 장면을 기대한다면 이번 영화는 다소 철학적이고 난해할 지도 모른다. 심야영화로 본다면 졸음이 쏟아질 수 있으니 아침이나 낮 시간대 관람을 추천한다.
100% 이해하려는 생각 자체를 접고, 그저 특유의 영상미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영화가 끝난 후부터 이 영화의 진가는 시작된다. 기억 속 남은 장면장면을 하나하나 곱씹는 재미가 쏠쏠하달까.
이미 제목부터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나름의 대답을 하고 싶어지지 않나. 생각하게 만드는 명대사가 가득하다. 너무 의도한 것 같은 대사는 상투적이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고, 넷플릭스도 모르는 옛날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는 일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굳이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서 보게 만들었을까.
스스로 마지막 작품을 번복하고 다시 장인정신으로 무장해서 7년간의 고된 수작업 끝에 완성한 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했다.
그동안의 어떤 이야기보다도 그의 인생이 장면 곳곳에 담겨있다. 언뜻 보면 그의 자서전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가 선물했던 책 중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있었다고.
이번엔 진짜 은퇴를 강조했으나 이번 작품이 은퇴작이 아니라는 최신 소식이 들린다. 계속 피해왔지만 내 일을 할 수밖에 없어 돌아왔다던 그. 만들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하며 투혼을 발휘한 이번 작업이 큰 전환점이 된 것일까. 어쩌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그의 인생 2막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품일지도.
또다시 은퇴선언을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 더 이상 은퇴선언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라는데 그를 이을 후임을 발굴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디지털화되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상이지만, 제 길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아날로그의 세계도 힘을 잃지 않고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