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밧과 1,200밧 사이
드디어 TCDC(Thailand Creative&Design Center)에 첫 방문한 날. 입장료가 하루권은 100밧(4천 원)이고, 1년 정기권은 1,200밧(4만 8천 원)이라 고민됐다. 로컬 기준 한 달에 한 번쯤은 와야 뽕을 뽑을 수 있는 공간인 셈. 내겐 치앙마이 세 달 살기 중 두 달이 남은 상황이라 시간은 충분했다. 거기다 먼저 방문한 이들의 평가가 모두 좋아서 1년 정기권을 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어떤 분위기일지 몰라서 일단 하루권을 끊었다. 집에서 TCDC는 자전거로 30분이 걸려서 자주 오기엔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고. 디자인 도서관이 내 취향은 아닐 수 있으니까.
2층 도서관에 자리 잡고 구경했는데, 눈길 가는 잡지와 책이 많았다. 태국어나 영어나 일본어라서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거쳐야 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 서적은 없더라. 원래도 책을 잘 안 읽는데, 외국 책만 꽂힌 도서관은 날 더 노력하게 만든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만 읽게 되어서 진짜 내가 관심 있는 건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에 로마에서 아침에 도착해서 저녁에 떠나야 하는 일정으로 어디 가기 애매했을 때 국립도서관에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땐 구글 번역기까지 써서 책을 읽을 생각을 못했다. 아무래도 비닐커버를 씌워 깔끔하게 관리되는 최신 서적이 많은 TCDC의 책이 더 읽고싶더라.
사실 내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다. 책도 에어컨도 와이파이도 콘센트도 빵빵한 천국이다. 여긴 심지어 아이맥도 있고, DVD 관람도 가능하고, 스캔 복사가 되는 프린터도 갖춰져 있다. 1층에 있는 카페와 전시공간은 보너스.
이름 모를 외국인이 쓴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기를 보고 빠져들었다. 그림이 예쁘고 내용이 자세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더라. 글보다는 컬러풀하고 그림이나 사진이 많은 책이라 반가웠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하나 알았으니 그걸로 충분한 발견이었다.
가디건이 필요할 정도로 에어컨을 세게 틀어줘서 바깥의 한낮더위를 새까맣게 잊었다. 보통은 에어컨, 와이파이, 콘센트 셋 중에 뭐 하나가 부족하더라도 감안하고, 카페에 누가 되진 않을까 눈치보며 머무는 게 일상이다. 하루 100밧에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월요일을 제외하고 아침 10시 반부터 오후 7시까지 머물 수 있다니. 디지털노마드에게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그냥 왜 그럴까 궁금함에서 끝날 정보들이 담긴 전문서적이 많아서 내가 학생이라면 연간권 끊어서 나만의 스터디카페로 이용했을 것 같다.
워낙 TCDC 치앙마이가 매력적이라 TCDC 방콕과 콘깬도 방문하고 싶어졌다. TCDC의 찐 애정테스트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11번 더 방문하면 연간회원권 안 끊길 잘한 것이고, 그 이상을 방문하면 처음부터 연간회원권을 끊을 걸 후회할 테니. 하루에 100밧을 투자해서 업무효율을 올릴 수 있다면, 1,200밧은 물론이고 그 이상도 충분히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보물 같은 곳 덕분에, 치앙마이 한 달 살기가 바쁘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