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까지 진격한 가운데, 이 같은 보도가 나온 겁니다. 사실 이게 말이 대화지. 사실상의 항복 문서 조인식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기는 한데요. 대화는 전쟁이 나기 전에 해야지. 지금 수도 함락 목전에 있으니까요. 실제로, 러시아도 "무기를 버리면 대화하겠다" 이렇게 밝혔거든요.
항복 문서를 쓴다고 해도 을사조약 처럼 주권을 넘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직접 점령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예측해 왔는데요.
딩딩대학 뉴스연구소에서 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고 갈게요.
우선, 국제법 위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침략 행위에 의한 영토 취득은 불법으로 간주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UN헌장 2조 4항에 위배되는 무력 사용은 무효입니다.
여기에, 어떤 내용이 규율돼 있는지 살펴볼까요?
UN 헌장 2조 4항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
즉, "정당한 이유 없이 힘으로 땅 뺏으면 안 돼~"라는 거죠.
한글 번역본을 보면 그냥 '삼간다'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 헌장의 영어 원문을 살펴 보면 이게 나름 강력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조동사 shall을 쓰고 있는데요. 영문 법조항에서 바로 이 shall은 강력한 의무를 의미하거든요. shall we dance랑 완전히 달라요!
UN헌장 2조 4항에서 의무를 부여하는 조동사는 shall로 쓰여 있습니다.
잠깐 딴 얘기지만, 그래서 국제 조약에서 shall을 어지간해서는 잘 쓰지 않습니다.
쓰더라도 조심해서, 혓바닥 길~~ 게 풀어 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일례로, 기후변화 협정인 '파리 협정'을 뜯어보면 진짜 중요한 조항에는 'shall endeavor to V.... ' 이런 식으로 써놨거든요. "~ 하기 위해 반드시 노력해라~" 이런 식이에요.
아래 사진을 잘 보세요.
제가 파리협정문 4조 조항을 실제로 가져온 건데요.
4조 9항에는 shall communicate 라고 되어있죠.
"반드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이렇게 "소통하라"처럼 부수적 항목에는 강력한 의무를 부여해 놓고,
실제 파리협정문에서 shall이 쓰인 형태를 가지고 와 봤습니다. 차이를 알 수 있어요.
15항처럼 협정의 이행과 관련한 정작 중요한 실질적 조항은 shall take into consideration .....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식으로 shall 뒤에 혓바닥이 길어요.
"최선을 다할 의무만 규율해 놓으면 나중에 못 지켜도 상관없잖아요."
자, 다시 무력 사용 금지를 규율한 UN헌장 2조 4항으로 돌아와 보면요.
shall refrain~ : 반드시 삼가야 한다!!!!!!!!
이렇게 UN헌장 2조 4항은 shall 뒤에 바로 삼가야 할 의무를 규율해 놨어요.
이례적으로 강력한 거죠. 아무래도 UN이라는 체제 자체가 2차 대전 이후, 승전국들이 새로운 전후 질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장치로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무력 사용에 대해선 강하게 규율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죠. ( 물론, '평화 모색'이라고 쓰고 '밥그릇 지키기'로 번역도 가능합니다. )
이에 위반하는 정복 전쟁은 국제법상 무효로 간주될 수 있거든요.
실제로,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사건에서 "전쟁에 의한 영토취득이 불가능하다는 건 국제 관습 법규다." 이렇게 판시한 사례도 있습니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살펴볼게요. )
여기서 관습 법규(custom)라는 건 다른 합의 없이도 준수해야 하는 의무다. 뭐 이런 얘기죠.
이 때문에 러시아도 이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나름 러시아도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데..
아무리 급해도 우리가 명색이 로씨야~ 인데... 닉값은 해야 되지 않겠니?
그래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동부 지역 주민들을 보호한다. 난민들 지키러 간다. 이런 식으로 명분 만들기에 주력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푸틴이 개전 첫날 사방에서 총공세를 펼치면서도 한 말은 "점령 계획은 없다" 였죠.
딩딩리포트가 신기(神氣)가 있는 건지, 말이 씨가 되는 건지 정확히 1주일 전, 지난 2월 19일 딩딩 리포트 <거울 반사> 편에서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제재가 쉽지 않을 거라는 취지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어젯밤 사이 상황은 그런 흐름대로 흘러갔습니다.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건 당장은 러시아를 말려 죽일 수도 있겠지만 이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해 블록을 형성한다면, 그건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가는 대목이죠. 사실, 중국과 러시아는 사이가 좋아 보여도 나름 둘이 쌓인 과거도 있고요. 아직,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 동맹 관계가 아닙니다.
( 중국과 러시아의 과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드리고요. )
미국은 1970년대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과 대화를 하면서, 중국과 소련을 이간질(?)시키면서 재미를 보는 전략적 선택을 했던 과거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