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를 뚫고,
지하철 모니터에서 방송 속보가 이어졌다.
“속보입니다. 200여 대의 AN-2 기체가 서울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일부는 우리 공군과 방공망에 의해 격추되었으나, 많은 수가 서울과 수도권에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AN-2기에는 통상 열 명에서 열두 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탑승하며, 천 명 이상이 침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군 군복과 무기를 소지하여 구분이 어려울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정우가 근무했던 707 특임대의 상대가 바로 그들이었다.
‘북 정규군이 서울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희박해. 의정부, 파주, 철원까지는 몰라도, 우리 군은 생각보다 강하다. 쟤들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 누군가 이겨내라고 했겠지.’
서울은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정우의 가족이 있던 산본 9단지는 평화로웠다. 포격음은 들려왔지만, 위기감은 없었다. 모든 시스템이 이상하리만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혜는 직감했다. 그 평화도 잠시일 뿐이라는 것을. 전쟁은 모두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우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동시에 한 가지 숙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퇴근, 퇴근해야 하는데.’
정우는 철근이 드러난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벽에 박힌 의자 뒤에서 백팩을 찾아 속을 비우고, 스마트폰 조명을 켠 채 무너진 탕비실로 들어갔다. 어제까지 소리를 지르며 인신공격을 하던 전무님의 시신을 지나, 멈춰버린 냉장고에서 생수와 초코바 등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탕비실 구석에 있던 90년대 고속도로 지도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집까지는 차로 22km, 차단된 도로와 산악지형을 고려하면 적어도 이틀. 북 특수부대는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노리겠지. 주요 도로와 교차로는 헌병대가 깔렸을 거고, 지휘 체계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기계화 보병 여단이 과천 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거야. 대공포 소리가 들리면 적들이 오고 있다는 신호. 특전사 애들도 곧 오겠구나.’
그랬다. K2 흑표 전차와 K21 보병 전투차량이 선바위역에서 기동을 시작했고, 우리 자주포와 견인포들도 일제히 반격을 시작했다. 아파치 공격 헬기와 코브라 헬기까지 과천 쪽으로 속속 날아들고 있었다.
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자 정우 생각대로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대공포들이 하늘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비호 복합, 천궁, 20mm 발칸 대공포까지 목표는 북의 AN-2기였다.
“퉁퉁 퉁퉁 퉁퉁” “다라라라라라락” “다라라라라라락”
“이 새끼들. 왔네.”
움푹 파인 포탄 구덩이를 우회하니 편의점이 있던 자리다. 맞다. 이곳엔 세븐일레븐이 있었다. 편의점 사장은 다행히 살아있었다. 정우가 지나가자 초점 없는 눈으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무너진 건물과 구덩이 사이에 방금까지 이용하던 여학생과 전기 자전거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정우는 짧은 한숨과 함께 뜬 눈으로 숨을 거둔 학생의 눈을 쓸어내렸다.
전기 자전거에 올라 김밥천국 쪽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며 정우는 생각했다.
‘주요 도로와 교차로는 이미 통제다. 도로를 피해 은밀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루트… 아!’
그는 양재천 자전거 길을 떠올렸다. 선바위역 쪽으로 자전거길이 연결된 양재천은 중간중간 수풀이나 다리 아래로 은폐하기도 수월했다. 적어도 선바위역까지는 비교적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미사일 공격과 대공포화를 뒤로 하고 정우는 양재천 자전거 길을 내달렸다. 양재 시민의 숲을 가로지르는 경부 고속도로 교각 아래 미처 대비하지 못한 시민들이 잉어 때처럼 놀란 눈을 뻐끔거렸다. 호루라기를 불며 시민들을 대피시키던 민방위 대원이 정우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기요! 아저씨! 지금 어디 가요! 빨리 이쪽으로 와요! 언제 또 포탄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정우는 잠시 멈춰 손목을 바라봤다. 6시였다.
“허억허억, 저 퇴근해요. 여섯 시, 예?”
“…”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정우도 어이가 없었다. 민방위 대원도 양재천 시계탑을 힐끗 바라보곤 멈칫했다. 왠지 공감하는 눈치였다.
‘헉, 헉, 아, 배터리.’
자전거 페달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