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을 열고 나왔다. 조금씩 가까이 가서 문앞에 기대 서있었다. 철창을 닮은 모기창을 어쩌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 모습이 안됐던지, 급식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나가봐도 돼요. 의자도 있고 꽃도 있어요. “
내가 반색을 하며 좋아라하니까 아주머니는 손수 모기창을 따주셨다. 목발을 짚은 팔에 힘을 주고 폴짝 경계선을 넘었다. 문 안의 세상에서 문 밖으로 발을 디디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감격에 겨워 제법 세차게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었다. 그것도 꽤나 한참이나.
급식실 아주머니는 낯을 많이 가려서, 몇 번이나 내 쪽에서 말을 걸어본 후에야 비로소 대화를 나누게 됐다. 아주머니는 이 병원에 연예인이 얼마나 많이 왔었는지 얘기해주었다. 조인성이니 황정민이니, 하정우 같은. 그리고는 “여자 연예인은 걔 있잖아요. 제니, 아니 제니가 아닌데… 제니는 블랙핑크고. 걔 누구더라 왜 몸 좋고 말 많은 애… 아, 제시! 걔도 입원했었어요.“ 한다. 당신의 일터가 이렇게 훌륭한 곳이라는 듯, 아주머니 얼굴에 자부심이 인다. 귀엽다… 나는 문득, 애기처럼 신이 난 아주머니의 붉은 뺨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입원했던 연예인 얘기는 그들의 사생활로 이어지고 또 병원의 역사며 부지런한 원장의 인품까지 끝이 없다. 아주머니는 물걸레 청소를 멈춘 지 이미 오래됐다. 내 것이 아니어도 타인의 것, 혹은 그들의 뭔가를 믿고 칭찬하는 일은 때로 아름답다. 무턱대고 내뱉는 비아냥과 불신보다, 그것은 마음을 따스하게 달구는 눅진한 맛이 있다.
창밖으로 나와보니 정말로 꽃이 있다. 몇 송이 되진 않으나 보랏빛과 자주빛 그리고 노란빛을 내뿜는 작고 여린 꽃송이들이다. 그런데 바닥에 널부러진 주황꽃 하나가 눈에 띈다. 꽃대가 꺾였다. 줍고 싶지만 목발을 짚고 선 나는 쭈그릴 수가 없다. 저걸 어쩌나… 바라보는데, 휘익 불어본 바람에 떠밀려 순식간에 꽃송이는 4층에서 추락해 버렸다.
나약한 것은 추락한다. 나는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나약한 무엇이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다. 화단에 심어진 화초들이 부르르 떨다가 와장창 몸을 뉘었다가 다시 우르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목발을 꽉 부여잡고, 나는 추락할 무엇이 보이면 눌러잡아 보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바람은 어느새 잦아들었다.
나약함이 죄악이라고 배운 듯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건 우리 세대에게 금과옥조 같은 명제였다. 나약한 것은 도태되거나 밀려나거나 심지어 살해된다.
그것은 드라마에서도 재현된다. 장안의 화제인 <D.P.>도 마찬가지다. 탈영병들은 대체로 집단에 부적응한 자이거나 사회적 약자다. 그들의 선택이 탈영인 것은, 그들을 그토록 몰아넣은 타인이거나 집단의 폭력이거나 그들 모두의 무관심이었다. 인간은,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 이전의 인간은 약탈자이고 살해자였다. 사냥을 하며 짐승을 죽였고 다른 부족을 덮쳤다. 약한 자(동물)는 도륙 당하거나 도태됐다. 온몸에 피를 묻히고 수많은 생명을 살육했던 잔인함은 우리들 유전자 어느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라고, 소시오 패스 같은 이들은 그런 유전자의 발현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언젠가 개미를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마구 짓이기는 아이들을 보며 그 얘기를 떠올렸다. 개구리를 내팽개쳐 죽이고 뱃대기에 십자가를 그려넣은 후 침 뱉기로 뱃대기 중앙을 맞추는 놀이를 했다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도 그 추론에서 멀지 않아 보였다.
약한 것을 짓밟는 것이 불한당의 짓이라고, 어른이 된 우리는 강변하지만 누구라도 약자가 되고 싶진 않다. 강자로 군림하며 긍휼한 마음으로 약자를 보살피는 것이 최선이거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위선이 그리고 가해가 그리고 오만이 깃든다는 건, 알지만 그닥 중요하지 않다. 일단 강자가 되고서!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라고, 그래야 훌륭해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부실한 것들은 그래서 어쩔 수 없다. 꽃대가 끊어져 추락한 꽃처럼 시류에 흔들리고 대세에 눌렸다가, 소리 소문 없이 눌러앉거나 사라진다. 내게도 그것은 딴 세상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내가 살아갈 세상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제법 거센 바람이 분다. 아마도 나는, 더욱 몸을 움추려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