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 기묘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울지 않았고,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는 창고 구석에 웅크려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다. 부모가 굿을 하고 용한 병원을 찾아다녀도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다섯 살이 되던 해, 아이는 처음으로 입을 열어 생떼를 썼다.
"내 미래를 찾아가야겠어. 이대로는 자라고 싶지 않아."
부모는 아이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댄 이름과 주소는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의 한 빌딩 숲을 찾았다. 놀랍게도, 아이가 지목한 남자가 그곳에 실존했다. 대기업 마케팅 팀장, 30대 중반의 지독한 워커홀릭. 남자는 난데없이 찾아온 꼬마를 보고 황당해했다.
"누구 집 애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비실에 맡기고 가시죠. 난 바쁩니다." "아저씨." 아이가 남자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남자는 멈칫했다. 아이의 눈이 자신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똑바로 살아야 내가 행복하게 클 수 있어. 지금부터라도 당신을 위한 삶을 살아. 안 그러면 난 여기서 성장을 멈출 거야."
남자는 헛웃음을 쳤지만, 그날 이후 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그를 옥죄었다. 야근을 하려다가도 '나를 위한 삶'이라는 말이 떠올라 펜을 놓았고, 승진 심사보다 옥상에서 보는 노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고민했다.
신기하게도 남자가 변할수록 아이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가 창고에서 나왔다고 했다. 학교에 가기 시작했고, 웃음이 늘었다고 했다. 남자는 자신의 변화가 아이라는 '과거'를 치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의문이 생겼다. 보통은 과거가 쌓여 미래가 되는 법 아닌가? 남자는 휴가를 내고 아이가 사는 시골 마을을 찾아갔다. 개울가에 앉아있는 아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야, 꼬마." 남자가 물었다. "네가 나의 과거라면, 네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 살아야 내가 잘 되는 거 아니냐? 왜 거꾸로 내가 변해야 네가 낫는 건데?"
아이는 물수제비를 뜨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저씨가 너무 빨리 달려서 그래요." "뭐?" "속도가 빨라지면 시간은 느리게 가는 법이잖아요. 아저씨가 앞만 보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 버리니까, 뒤에 있는 내 시간이 엉켜버린 거라고요. 아저씨의 운명이 바뀌어야 내 시간도 다시 흐르죠."
남자는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미래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도망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 "아저씨가 느리게 갈수록,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가까워지겠죠." 아이가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딱 마주치는 순간, 우리 중 한 명은 사라지게 될 거예요. 과거와 미래가 한 점에서 만나면 둘 다 존재할 순 없으니까."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완전한 통합을 의미하는가. 아이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아저씨든 나든, 누구 하나가 사라지더라도 상관없을 만큼 인생을 잘 살아봐요. 아, 그리고." 아이가 쑥스러운 듯 코를 문질렀다. "우리, 그 여자는 놓치지 말고 살도록 해요. 나도 그 누나가 꽤 마음에 들거든요."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천천히, 아주 느린 걸음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