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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나는 왜 이렇게 느린 걸까

독서는 처음이지?

by 에밀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옆에서 누군가는 벌써 절반을 넘겼는데,

 나는 아직 첫 장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어떤 날은 단 두 페이지 읽는 것도 벅찼다.

 그러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 너무 느린 거 아닐까?”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책을 오래 읽어왔지만,

 처음엔 남들보다 훨씬 느렸다.

 한동안 책을 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 느꼈던 초조함과 조급함을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만약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느리게 읽는 건 잘못이 아니라 너의 리듬이야.”


 우리가 걷는 속도가 다르고,

 밥을 먹는 속도가 다르고,

 생각이 깊어지는 속도도 모두 다른 것처럼

 독서도 각자의 호흡이 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카를로 페트리니는 이렇게 말했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나의 시간에 맞춰 사는 일이다.”

 그 말은 독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었다.


 느리게 읽으면 좋은 점이 있다.

 책이 주는 감정이나 질문이

 몸에 더 깊게 스며든다는 것이다.

 빠르게 읽을 때는 놓치는 문장들이

 느리게 읽으면 마음에 조용히 닿는다.

 내가 그걸 알게 된 데에는 15년이 걸렸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느리게 읽는 사람은 오래 남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좋은 대화도 천천히 흐른다.

 상대의 말 끝을 기다려주고,

 내 말이 도착할 시간을 여유 있게 남겨놓을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독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책과 나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책이 주는 말들이 더 깊어졌다.


 그러니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책은 경주가 아니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건 페이지 수가 아니다.

 책이 나를 바꿔놓는 순간을 만나는 것이고,

 그 순간은 대부분

 느린 독서의 한가운데서 찾아왔다.


 당신은 느려서 부족한 게 아니라,

 그저 당신만의 속도로 읽고 있을 뿐이다.

 그 속도면 충분하다.

 책은 늘, 기다릴 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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