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해자들'(정소현, 현대문학)을 주문해 읽었습니다.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가 세계일보 칼럼 ‘층간소음,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다’에서 추천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끔찍했습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벌어지는 '지옥도'입니다. 외로움과 층간소음 때문에 정신병에 걸린 주민이 어떻게 위아래층 이웃들을 망가뜨리고, 자신도 파멸하는지, 그리고 그런 싸움이 어떻게 전염병처럼 같은 건물 내에 번지면서 살인으로 이어지는 지를 리얼하게 묘사합니다.
장 대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천장이 두꺼운 아파트를 짓는 물리적 해결책도, 실내 슬리퍼를 신고 매트를 깔아 조심하도록 권하는 조언도, 위원회 등 공적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층간소음 해결에 중요합니다. 그러나 유대를 잃은 인간은 늑대처럼 잔혹해지고 존재 증명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이들은 작은 소리도 크게 듣고 없는 소리도 만들어 듣습니다. 이웃 사랑 없이 무엇도 이들을 막지 못합니다. 아파트를 마을로 바꾸는 사회적 해결책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층간소음은 외로움의 호소다. 층간소음 분쟁을 해석하는 중요한 코드입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파편화된 개인주의 사회로 변하면서 아무도 조그만 손해도 감수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복수하려 드는 냉혹한 사회. 그래서 누구나 누군가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아파트 공간 안에서 비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거죠.
예술의 자양분은 갈등과 혼돈, 비극입니다. 예술은 그 틈바구니에서 존재를 증명할 이유를 찾아냅니다. 사람들이 미처 갈등 속에 내재한 함의를 읽어내지 못할 때 그를 잘게 분석하고, 버무려,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이를 통해 갈등을 증폭시켜 때론 사회적으로 문제를 공론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사이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소설, 영화 등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정소현 작가님의 소설 ‘가해자’가 지난 10월 나왔고, 그 한 달 전엔 층간소음 분쟁과 관련된 네 가지 에피소드를 묶어 만든 소설 ‘위층집’도 발간됐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층간소음 분쟁을 공포, 추리, 스릴러 형태로 엮어 낸 책입니다.
올여름엔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영화 ‘괴기 맨션’이 한 때 화제였지요. 5개 에피소드 중 첫 번째 에피소드가 층간소음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아래층 아이들의 소음을 항의하러 갔던 작가가 낡은 슬리퍼들만 발견한 후 화가 나서 이를 갖다 버렸고, 그날 저녁 아이들의 방문을 받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다음 주에는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한국 최초 오디오 무비 ‘층’도 개봉한다고 합니다. 잠깐 트레일러를 들어봤는데 층간소음 관련 살인사건을 마치 영화를 보듯, 소리로만 아주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나오면 꼭 보려고, 아니 들어보려고 합니다.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소설 영화는 현실에서와 같이 하나같이 끔찍하고 우울하고 비극적입니다.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닥과 천장, 벽을 누군가와는 필연적으로 공유해야 4 각형의 빈 공간 속에서 완전한 고요와 평화를 원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더구나 일부가 아니라 5000만 명이 넘는 국민의 70%가 그런 공간에서 사는 게 현실입니다. 어쩌면 층간소음 문제가 아직까지 현 수준에 머무르는 게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폭발 직전에 휴화산이라고나 할까요.
제 우울한 전망은 한국의 유난스러운 층간소음 비극이 글로벌리 큰 주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옥 등으로 우리 사회의 극단적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한 모순적 상황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아파트 공화국’ 폐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나라든 층간소음이 없는 곳은 없으니 한국의 극단적 상황에 대해 공감해주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그런 시나리오로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어쨌거나 층간소음은 이제 수수방관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모습으로 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경고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경찰들에게만 왜 제대로 대처를 못했느냐고 다그쳐서 풀릴 문제도 아닙니다. 다들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