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는 머리부터 손등, 발끝까지 ‘빼박’인 엄마와 ‘씨 다른’ 여동생 둘 뿐. 화환도 M이 다녔다는 정보지 비스무레한 사이비 언론사에서 보낸 거 하나 뿐이고, 그 옆엔 그녀가 졸업한 경상북도 무슨 고등학교 동문회와 000 상조회사에서 가져다 놓은 근조기 두 개.
내일 발인이지만 다녀간 사람이라고해야 다 합쳐서 10명이나 될까. 친구와 회사 동료 상사라며 찾아온 사람이 쓴 방문록이 한 페이지가 다 안돼. 코로나 때문에 안 그래도 휑한 장례식장이 더 추레해 보여.
내가 나쁜 놈일까.
M이 떠났지만 슬픈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 나한테 그렇게 헌신적이었던 여자였는데도 말이야. 지금 솔직히 내 머릿속엔 온통 올 여름 H와 함께 떠날 유럽 여행 생각뿐이야. 아이패드를 켜고 열심히 여행 아이티너리와 여행사로부터 받기로 했다는 특별 이벤트 서비스를 볼이 상기될 때까지 열심히 설명하던 H. 내 인생에 갑작스레 나타난 그 귀여운 여인에게 키스하지 않을 수 없었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M에 대한 예의로 마음을 다잡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또 어쩔 수가 없네. 긴 한숨이 나오는 걸. 2년 가까이 동거했다지만 나를 알 만한 사람도 없고, 내가 인사할 만한 사람도 없어. 이제 60을 갓 넘겼다는 M의 엄마는 하루 종일 졸고 있고, 그녀의 '씨 다른' 동생(확실히 M과 다르게 이지적이고 호리호리한)은 장례식장에서도 뭔가 열심히 카톡으로 연락하며 바쁘게 일하고 있어. 그들에겐 말을 걸 마음도, 틈도 없어 보여. 장례식장 식당에도 주방 도우미들의 숨죽여 깔깔대는 웃음과 세상살이 돌림 박자 얘기만 간간히 들릴 뿐.
참을 수 없는 나른함과 졸음.
밖으로 나오니 더 숨이 막힐 뿐이야. 금 간 장례식장 건물 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교회의 기운 십자가, 그 교회 맞은편으로 보이는 건물 지하 노래방으로 들어가는 술 취한 50대 남성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살찐 엉덩이의 여성. M이 떠난 이 도시는 처음부터 M의 고향이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어.
그러고 보니 2년전 M과 처음 만난 날도 오늘처럼 답답하고 쓸쓸했지.
찜통더위 끝에 비가 '말 그대로' 장대처럼 쏟아졌던 날. 갑작스러운 비에 뛰는 사람들도, 여유롭게 우산을 펴는 사람들도, 이런 비는 그냥 맞아도 돼 라며 태연히 걷는 사람도 모두 “시원하다”라고 입을 모으던 그날.
내가 세상 그 모든 것과 막 이별을 고했던 그날.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렸던 그날. 그녀는 그날 편의점 앞에 있었어. 나처럼 불쌍한 모습으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