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초기에 유산 위험이 높기 때문에 초기 임산부들은 하루 2시간의 단축근무가 가능하다. 단축근무를 위해 나는 양가 부모님보다도 회사에 먼저 임신 사실을 알렸다. 다들 축하한다는 말과 동시에 힘들지 않냐, 입덧은 없냐 걱정을 해 주었는데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원래 건강하다 못해 좀 둔한(?) 나를 아주 잘 아는 지인들은 그래 너라면 임신 중에도 별일 없을 거야 ~ 라며 화답했고 나 또한 그렇게 자신만만했다. 애초에 임신을 계획하면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임신기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다.
나는 임신을 4주 차에 일찍 확인한 편이었는데, 5주 차쯤 되자 살살 초저녁부터 졸음이 밀려오고 아침마다 속이 울렁대기 시작했다. 초기에 잠이 많다더니 그러려니 했고 몸이 불편하긴 하지만 전혀 회사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퇴근해서 집에 오면 평소보다 2~3시간 일찍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일어나 멀쩡하게 출근했다. 업체 미팅이나 다른 업무도 평소와 다름없이 똑같이 소화했고, 인사팀과 팀원들 외의 사람들에게는 굳이 임신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도, 임신했다고 해서 뭔가 배려받을 만한 상황이 오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임신 6주 차의 어느 주말. 그 날은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처음 임신 소식을 전한 날이었다. 우리보다 몇 배는 더 기뻐하시는 시부모님에게서 축하 인사를 듣고, 그보다 더 화기애애할 수 없는 식사를 하고, 날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산책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늦은 오후쯤부터 꾸물꾸물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체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임산부는 소화제를 못 먹어서 불편하다고 구시렁대다가 잠깐 누워 눈을 붙였다 일어났는데, 어라? 상태가 뭔가 심상치가 않다고 그때 처음 느꼈다.
밤을 홀딱 새우고 다음날 아침에도 속이 심하게 메슥거리자 이건 체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부드러운 메뉴로 식사를 차렸지만 도무지 잘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몇 숟갈 떴지만 결국 화장실에 달려가 다 토했다. 체한 거라면 토하고 나면 보통 쑥 내려가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하고 결국 위액까지 토하고 나니 그제야 이 이상한 증상이 바로 입덧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 워낙 무던한 몸이라 입덧 같은 건 겪지 않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고 생각하며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검색해 보니 입덧은 빠르면 6주 차에 시작해서, 대부분이 10주~12주 경이면 끝난다고 했으니 조금만 참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덧은 나날이 강도가 더 심해져 겨우 며칠 만에 나는 초주검이 되어 늘어졌다. 하루 세 끼 식사는 사치, 이 기간 내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누룽지를 끓인 숭늉이나, 간간하게 끓인 국물이나 두유, 아주 약간의 과일 정도였다. 씹어서 삼키는 대부분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늘 배가 고픈 상태였는데, 먹지 않으면 울렁거렸고 그래서 구역질을 참으며 억지로 음식을 먹고 나면 다 토하기를 반복했다. 반복되는 울렁거림에 정신이 가출할 지경인데 그 와중에 위가 비어서 배가 고픈 걸 느낄 때마다, 뭔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몸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면 그 냄새가 꼭 닫아 놓은 방문을 넘어 안방까지 들어와서 구역질을 했다. 그나마 미역국은 넘길 수 있어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주려 해도 기름에 소고기 볶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 고기를 빼고 끓인 미역국만 겨우 삼켰다. 이 짓을 12주까지 해야 한다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출근길에 겨우 5~7분 남짓 버스를 타는데 멀미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도중에 내렸다. 차를 탈 수 없으니 한겨울의 추위에 회사까지 15분을 걸어 다니며 이따금 길에서 토하기도 했다. 그나마 한낮에는 상태가 조금 나았기 때문에, 구역질을 참아가며 오전 시간을 버티고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한 뒤 오후에는 업체 미팅을 했다. 미팅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속이 메슥거려 겨우겨우 4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침대나 소파 위에 널브러졌다. 그나마 회사와 집이 가까워서 천만다행이었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있기만 했고, 남편은 퇴근 후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저녁 준비며 빨래며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난 침대에 누워 입덧이 언제 끝나는지, 입덧을 줄일 방법이 없는지 몇 번씩 검색해 보고는 좌절하고는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갈비뼈에 금이 간 듯 아프기 시작하더니, 잘 때 돌아눕다가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그 무렵 반복되는 구토로 위액에 목이 상해서 심하게 기침을 하고 있었는데, 기침을 할 때마다 갈비뼈가 한 대 얻어맞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어느 날 새벽, 갈비뼈 통증과 메슥거리는 속에 끙끙대며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 장기가 뒤틀리는 것 같은 심한 복통이 시작됐다. 자는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갔더니 의사 왈, 담석이 의심된다며 날이 밝으면 복부 초음파를 해보고 담석이 맞으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날벼락같은 소리를 했다.
아픈 갈비뼈를 부여잡고 다음날 아침 병원을 찾아 초음파를 했더니, 다행히 담석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의사의 말로는 잦은 기침으로 인해 갈비뼈가 골절되는 경우는 꽤 흔하다며, 다만 임산부라 엑스레이를 찍는 건 조심스럽고 딱히 약을 쓸 수도 없으니 그냥 조심하면서 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쯤이면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우아하게 우욱 하고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산부인과에 가보면 짝짝짝 축하합니다ㅡ그런 입덧은 순전히 미화된 환상일 뿐이다. 현실은 내장을 다 뱉어낼 것 같은 엄청난 토악질과 정신을 붙잡을 수 없는 24시간의 울렁거림, 그리고 심한 구토 뒤에 따라오는 속 쓰림과 우울증이었다.
밤새 위액이 역류해 누울 수도 없어 쿠션을 받치고 소파에 앉아 베란다 바깥을 내다보면서, 진심으로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잠을 잘 수가 없어 한밤중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멍하니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또다시 구역질이 나서 한바탕 토하고 나면, 빨리 애 낳으라며 재촉하던 친정엄마와 지인들이 합심해서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원망이 밀려왔다가, 결국 임신하기로 결정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가, 무엇보다도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고 딱히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눈물만 났다. 울고 토하고를 반복하다가 지쳐서 설핏 잠들고 깨어나면 또다시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살면서 진정 그때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옥에 빠져있었던 적은 난생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