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다. 시시콜콜한 작은 농담과 행동에도 ‘까르르’하고 웃는다. 내 마음이 유독 차가웠던 시기, 웃는 방법을 잊어버린 나는 그녀의 해맑은 웃음이 거슬렸다.
나는 원망과 분노를 품고 지냈다. 반려묘를 고양이별로 보냈고,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연애도 실패했다. 행복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마음엔 늘 행복이 삐딱하게 걸려있었고, 그 행복은 온전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심기가 불편했다.
어느 날 그녀가 퉁퉁 부운 눈을 하고 나타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치매로 판정이 났기 때문이다. 늘 웃던 그녀가 눈물을 보이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웃음을 질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잠시 슬픔에 잠겼지만 그녀답게 씩씩하게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을 담담하게 이어가는 성숙한 그녀를 보며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난 그녀가 웃으면 같이 웃는다. 그녀가 울적해 보이면 내가 먼저 웃어주기도 한다. 매일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연습을 하면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한다. 화를 내고 슬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고, 살아가다 보면 슬픔과 불행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온전한 행복에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살아갑니다. 사실 누구나 이러한 삶의 목적을 어렴풋하게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목적이라는 게 글로 적거나 외운다고 해서 기억되거나 체화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좋은 기분이라는 감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포착하는 세상의 갖가지 감동의 신호들을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까스로 ‘나’라는 형태를 구성하고, 우주에 흔치 않은 유기체로서 감각하고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우주 단위로 보면 우리는 굉장한 사건의 집합체입니다.
-좋은 기분(박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