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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Feb 23. 2021

엄마의 명절 선물

당신의 영원한 어린이로 산다는 행운

#1

 지난 설 연휴도 내내 출근했다. 한두 번도 아닌데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따님, 토끼 인형 사줄까?

 백화점에 들른 엄마 눈에 인형이 들어왔나 보다. 멜빵바지 입은 토끼와 예쁜 드레스 입은 토끼 사진이 연달아 왔다. 나는 원고를 쓰다가 흐흐 웃었다.

 '내 나이가 몇 갠데...'

 생각만 그렇게 하고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토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다. 엄마는 오래 기다려 주지 않았다.

 -치마 입은 토끼로 살게.

 -따님 연휴에도 출근하니까 힘내라고 오모니가 사주는 숀물이야. 


 출근을 해도 떡국은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주장에 따라 설날 아침에 집에 들렀다.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집을 나서려는데 엄마가 종이 가방과 토끼 인형을 건넸다.

 "세상에? 이렇게 크다고?"

 "밤에 안고 자."

 안 그래도 인형들로 비좁은 침대에 끝판왕(...)이 등장했다. 요즘 밤마다 왼쪽에는 남편, 오른쪽에는 토순이와 함께 잔다. 


인산인해


#2

 하루 늦게 엄마 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세배를 하고 푸짐한 저녁상 앞에 앉았다. 시가는 차례·제사가 없어서 결혼하고 명절 음식은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엄마 덕분에 꼬박꼬박 먹고 있다. 이제 윷놀이 좀 해볼까 하는 차에 명절 선물 이야기가 상에 올랐다. 전날 엄마가 건넨 종이 가방에는 남편과 나의 양말 한 상자씩이 들어 있었다. 

 "추석에도 사줬는데 뭘 또 샀어. 지네가 아니라 신을 발도 없는데."

 "너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명절에 꼭 양말을 사주셔서 이때만 되면 양말이 사고 싶더라고. 왠지 안 사면 허전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얀색이었나 베이지색이었나. 비닐에 고이 들어 있던 할머니의 마음들. 이번에 엄마가 사준 양말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옷장에 소중히 넣어두기로 했다. 날이 좀 풀리면 할머니 산소 갈 때 신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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