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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pr 08. 2020

강아지, 나의 눈물점

어쩌면 너무도 당연히

 마감에 쫓기고 있는데 동생한테 메시지가 왔다. 깜빡이는 그걸 누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큰일 남. 순이 암인 듯.

 뭐, 한 글자만 쓰고 눈을 끔뻑거렸다. 어디부터 꿈일까 생각했지만 무엇 하나 진짜가 아닌 게 없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회사를 나왔다. 힘을 빼자마자 울기 시작해 서울역까지 왔다. 물론 기차 안에서도 그치지 못하고 여러 번 눈을 틀어막았다. 휘청휘청 걷다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주저앉았다. 놀란 얼굴이 흐리게 보였다.     

 

 "배에 종양이 있대. 암일 수도 있대."

 울음에 섞여 웅얼웅얼 주워섬기는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물었다.

 "지금 갈까? 가서 순이 보고 올까?"

 "싫어. 내가 가서 또 울면 무슨 일 난 줄 알 텐데."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돌덩이 같은 머리를 베개에 얹었다. 이럴 때만 찾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안 돼요. 도와주세요.'     


 다음 날 아침, 조직 검사를 위해 순이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영문도 모르고 배를 째게 된 강아지를 외면하는 건 못 할 짓이었다. 내가 얼마나 미울까. 그 마음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잘 부탁드려요."

 간호사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병원을 나왔다. 근처 콩나물국밥집에 엄마와 마주 앉았다. 나는 자꾸만 핸드폰 액정을 두드렸다.

 "시작했을까."

 "수술하는 데는 얼마 안 걸린다 그랬으니까. 이제 마취하지 않았을까."

 볼수록 더디 흐르는 시간을 원망하다가 눈을 감았다.     


 매정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나는 유독 우리 집 강아지에 약하다. 일단 울어버리니 이 정도면 약점이 아니라 눈물점이라고 해야겠다. 기분 나쁘면 물고 제 주인이 오면 알은 채도 안 하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까만 두 눈을 오래 들여다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주말 엄마 집으로 병문안을 하러 갔다. 순이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준 걸 까먹은 듯 꼬리를 힘껏 흔들며 뛰어나왔다.

 "뛰지 마, 뛰지 마~ 아파쪄? 이제 괜찮아? 언니 미워?"

 혹시 상처를 건드릴까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고개만 갸우뚱할 뿐 답이 없다. 실컷 핥으라고 손을 내주고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사랑을 주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말만 못 할 뿐 너는 내 동생인데. 언니가 더 잘할게. 아프지 마, 우리 강아지.     


+ 검사 결과 다행히 암은 아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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